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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470억 손배소, 노동권과 경영권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서

양상현 기자 2025. 4. 2. 09:35

한화오션 사태가 보여주는 한국 노사관계의 딜레마

철탑 위 18일. 한 사람의 목숨이 30미터 높이에서 위태롭게 버티고 있다. 김형수 거제통영고성하청지회장의 고공농성은 단순한 임금 협상을 넘어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노사 갈등의 단면을 보여준다. 47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깎인 상여금 회복이라는 요구 사이에서, 우리는 노동권과 경영권의 균형점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과 민주당이 사회적 대화 기구 출범에 합의했다는 소식은 분명 긍정적이다. 특히 한화오션이 사회적 대화 참여 의사를 명시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노조 측이 "선 단체교섭 타결 및 고공농성 해제, 후 사회적 합의 기구 출범"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실질적 진전으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 갈등의 핵심에는 원청과 하청 사이의 구조적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김희철 한화오션 대표이사는 "현행 하도급법에 따라 원청이 협력사 노동자 상여금 지급 등에 개입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법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원청은 하청업체의 운명을 좌우할 만한 절대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협력사 고유의 경영활동"이라는 논리는 책임 회피로 들릴 수밖에 없다.

손해배상청구소송은 더 심각한 문제다. 파업으로 인한 손실을 노동자에게 청구하는 것은 법적으로 가능할지 모르나, 470억 원이라는 금액은 노동자들에게 사실상 평생 갚을 수 없는 부담이다. 이는 파업권을 실질적으로 무력화하는 효과를 가진다. 전현희 의원이 지적했듯, 이는 "노동자들의 생존권 문제를 제기한 파업"에 대한 과도한 대응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한국 조선업의 현실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한때 세계 1위였던 한국 조선업은 중국의 추격과 글로벌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최근 친환경 선박 수요 증가와 LNG선 발주 증가로 호황을 맞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주영 의원의 말처럼 "일시적 호황이 아니라 한화오션의 미래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노동조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

조선업의 특성상 숙련된 기술 인력은 핵심 경쟁력이다. 그러나 열악한 노동조건과 불안정한 고용 상태는 젊은 인력의 유입을 막고, 기존 인력의 이탈을 촉진한다. 김 대표이사가 말한 "성과에 따른 재원이 낙수효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은 구체적 실행 방안 없이는 공허한 수사에 그칠 위험이 있다.

사회적 대화 기구의 출범은 이런 복잡한 문제들을 풀어가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원·하청 노사와 전문가, 국회 등이 참여하는 이 기구가 실질적인 해결책을 도출할 수 있을까? 성공의 열쇠는 각자의 입장만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통의 이익을 찾아가는 데 있다.

한화오션은 법적 논리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하청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이 결국 기업의 장기적 경쟁력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노조 역시 당장의 요구만 관철시키려 하기보다, 지속가능한 노사관계 구축을 위한 대화에 열린 자세를 보여야 한다.

470억 원의 손배소와 철탑 위 18일의 농성. 이 극단적 대립 사이에서 우리는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한화오션과 하청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노동권과 경영권의 조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대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사회적 대화 기구가 실질적인 해결책을 도출하고, 김형수 지회장이 안전하게 땅으로 내려올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모두를 위한 승리의 시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