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장관의 '국민 직선' 논리가 간과하는 헌법적 가치
민주주의의 본질을 오해하는 위험한 주장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5일,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결정에 대해 "민주주의에 맞느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의 주장은 단순명료하다. 5천만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을 300명도 안 되는 국회의원과 8명의 헌법재판관이 파면하는 것이 어떻게 민주주의인가라는 것이다. 언뜻 그럴듯해 보이는 이 주장은 민주주의의 본질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드러낸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다수결의 원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현대 민주주의는 헌법에 기반한 '입헌 민주주의'로, 국민이 선출한 권력이라도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행사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핵심으로 한다. 이는 다수의 지지를 받는 권력이라도 소수자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헌법 질서를 파괴할 수 없다는 의미다.
김 장관의 논리를 따르면, 국민이 직접 선출했다는 이유만으로 대통령은 어떤 행위를 해도 면책받을 수 있다는 위험한 결론에 도달한다. 이는 마치 선거에서 승리한 정치인에게 4년 또는 5년간의 백지수표를 주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은 권력을 위임할 뿐, 포기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헌법을 중대하게 위반했을 때 이를 바로잡는 절차가 바로 탄핵이다.
헌법은 대통령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때 국회가 탄핵소추를 의결할 수 있고, 헌법재판소가 이를 심판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는 권력 분립과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구현한 것으로, 오히려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보호하는 장치다. 국회의원 역시 국민이 선출한 대표자이며, 헌법재판관은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정당한 절차로 임명된 헌법 수호의 최후 보루다.
김 장관은 "국민의 뜻은 어디 가고 누가 광장에 모여 데모 좀 하고, 또 국회의원 몇 명이 배신해 상대당에 합세해 200석을 넘고..."라고 말했다. 이는 국민의 집회 시위 권리와 국회의원의 양심에 따른 판단을 폄하하는 발언이다. 민주주의에서 국민의 의사 표현은 선거일에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집회와 시위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며, 국회의원은 당론에 구속되지 않고 양심에 따라 투표할 권리가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김 장관이 "헌법에도 문제가 있다면 고칠 건 고쳐야 할 것"이라고 언급한 부분이다. 이는 탄핵 제도 자체를 문제 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탄핵 제도는 권력의 남용을 막기 위한 필수적인 안전장치다. 이를 약화시키는 방향의 헌법 개정은 오히려 민주주의의 퇴보를 의미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민주주의의 위기는 종종 민주적 절차를 통해 선출된 지도자들이 그 권한을 남용할 때 발생했다. 히틀러도 민주적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잡았지만, 이후 민주주의 제도를 파괴했다. 따라서 선거를 통한 정당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본질을 간과하는 위험한 접근이다.
김 장관은 "한 번도 아니고 박근혜 전 대통령, 윤석열 전 대통령 다음에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이런 식으로 계속 해서는 '이게 민주주의냐'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탄핵 제도가 아니라, 왜 대통령들이 반복해서 헌법을 위반하는 행위를 하는가에 있다.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준수한다면 탄핵의 위험은 없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다수의 지배가 아니라, 법치와 기본권 보장, 권력 분립이라는 가치를 포함하는 복합적인 체제다. 김 장관의 주장처럼 직선제 대통령이라는 이유만으로 헌법적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선출된 독재'에 가깝다.
진정한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은 탄핵 제도의 약화가 아니라,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공직자들이 헌법과 법률을 엄격히 준수하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유신과 군사독재를 극복하며 쟁취한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