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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개헌이라는 '뜬금포', 내란 종식의 길을 흐리는 위험한 제안

양상현 기자 2025. 4. 7. 03:02

우원식 의장의 개헌론, 시선 분산과 내란 세력 면죄부의 함정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파면 결정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우원식 국회의장이 개헌을 꺼내들었다. 마치 내란 사태의 원인이 헌법에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 제안은 시기적으로나 맥락적으로나 심각한 오판이다. 지금은 개헌을 논할 때가 아니라 내란 세력을 청산할 때다.

정청래 의원의 지적대로 이 문제는 TPO(시간, 장소, 상황)의 문제다. 국가가 내란 시도라는 중대한 위기를 겪은 직후, 그 책임을 물어야 할 시점에 개헌을 논의한다는 것은 시선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마치 산불이 한창 타오르는데 다음 산림 조성 계획을 논의하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불부터 끄고 범인을 잡은 후에 재발 방지책을 논의하는 것이 순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번 사태의 본질을 오해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헌법에 문제가 있어서 윤석열이 내란을 시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윤석열과 그 일당이 헌법을 무시하고 짓밟으려 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 같은 헌법 아래서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은 계엄을 꿈꾸지 않았다. 헌법이 아니라 헌법을 지키지 않은 사람이 문제다.

개헌 논의가 시작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개헌특위가 구성될 것이고, 그 자리에 내란 세력과 연루된 국민의힘이 동등한 자격으로 앉게 된다. 정의와 불의, 선과 악이 마치 가치의 대립인 양 동등하게 취급받는 기이한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이는 내란 세력에게 면죄부를 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알베르 카뮈가 말했듯이 "오늘의 죄를 벌하지 않으면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이다. 내란 시도라는 중대한 범죄를 제대로 단죄하지 않고 개헌이라는 새로운 의제로 관심을 돌리는 것은 미래의 또 다른 헌정 파괴 시도에 면죄부를 주는 위험한 행위다.

개헌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헌법이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지금은 내란 세력을 청산하고 민주주의의 기본을 다시 세우는 데 집중해야 할 때다. 개헌은 그 이후의 과제다.

더욱이 개헌은 국민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상층부에서 갑자기 던져놓고 국민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방식은 민주적이지 않다. 국민들은 지금 윤석열 파면으로 간신히 안도의 숨을 쉬기 시작했다.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이 시점에 개헌이라는 복잡한 과제를 던지는 것은 국민의 피로감만 가중시킬 뿐이다.

국민의힘의 역사를 돌아보자.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그리고 윤석열까지. 하야, 탄핵, 군사반란, 내란 시도... 이들이 배출한 대통령 중 제대로 임기를 마친 이가 몇이나 되는가? 이런 정당이 반성은커녕 다음 대선을 준비한다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란 세력의 완전한 청산이다. 국민의힘은 내란 시도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해산하거나 최소한 다음 대선 불출마를 선언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유린한 데 대한 최소한의 책임지는 자세다.

우원식 의장의 개헌 제안은 의도가 무엇이든 결과적으로 내란 세력에게 숨 돌릴 기회를 주는 행위다. 지금은 "뭣이 중한디..."라는 말처럼, 무엇이 우선인지 분명히 해야 할 때다. 내란 종식이 먼저다. 개헌은 그 이후의 일이다.

민주주의는 항상 깨어있는 시민의 감시와 참여로 지켜진다. 윤석열 파면이라는 성과에 안주하지 말고, 내란 세력의 완전한 청산과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과제에 집중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윤석열 파면 이후 가야 할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