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원식의 '개헌 카드', 시기상조인가 절호의 기회인가
내란 종식도 전에 권력구조 개편 논의, 민주주의 진전인가 위험한 도박인가
윤석열 파면의 여진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우원식 국회의장이 6일 개헌 카드를 꺼내들었다. 대통령 선거일에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하자는 제안은 정치권에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그러나 이 제안은 시기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많은 질문을 남긴다.
우원식은 개헌을 "지난 4개월 극심한 갈등과 혼란으로 온 국민이 겪은 고초를 대한민국 대전환의 기회로 바꿔내자는 시대적 요구"라고 정의했다. 비상계엄 사태와 같은 헌정 유린 행위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근본적 처방'이라는 것이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개헌은 내란 시도에 대한 해결책이자 미래를 위한 예방책이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중대한 오해가 있다. 윤석열의 내란 시도는 헌법의 결함 때문이 아니라, 헌법을 무시하고 짓밟으려 한 개인과 세력의 문제였다. 같은 헌법 아래서도 다른 대통령들은 계엄을 꿈꾸지 않았다. 헌법이 아니라 헌법을 지키지 않은 사람이 문제였던 것이다.
우원식은 개헌이 번번이 무산된 이유로 대통령 임기 초의 주저함과 임기 후반의 추진력 상실을 꼽았다. 그래서 "새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되기 전에 물꼬를 터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견 타당한 분석이다. 그러나 이는 개헌의 필요성과 내용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미 이루어졌다는 전제 하에서만 의미가 있다.
현실은 어떤가? 윤석열 파면으로 국민은 간신히 안도의 숨을 쉬기 시작했다. 내란 세력에 대한 수사와 처벌은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개헌이라는 복잡한 의제를 던지는 것은 시선을 분산시키고, 내란 세력에게 숨 돌릴 틈을 줄 위험이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개헌특위 구성 과정에서 내란 세력과 연루된 정당이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는 정의와 불의, 민주와 반민주 세력을 동등하게 취급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내란 세력에 대한 단죄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과 함께 새로운 헌법을 논의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우원식은 "권력구조 개편은 이번 기회에 꼭 하자"고 강조했다. 그러나 권력구조 개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제시하지 않았다. 이는 자칫 '개헌'이라는 외피 속에 특정 정치세력의 이해관계가 숨겨질 수 있다는 의구심을 낳는다.
개헌은 국민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정치권이 주도하는 개헌은 자칫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나눠먹기'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특히 대선과 동시에 치러지는 개헌 국민투표는 대선 구도와 맞물려 본질이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
우원식은 여야 정당 지도부와 공감대를 이뤘다고 했지만,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주요 정치인들의 입장은 명확하지 않다. 이는 개헌 논의가 아직 정치권 내에서도 충분히 숙성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개헌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헌법이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지금은 내란 세력을 청산하고 민주주의의 기본을 다시 세우는 데 집중해야 할 때다. 개헌은 그 이후의 과제다.
알베르 카뮈가 말했듯이 "오늘의 죄를 벌하지 않으면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이다. 내란 시도라는 중대한 범죄를 제대로 단죄하지 않고 개헌이라는 새로운 의제로 관심을 돌리는 것은 미래의 또 다른 헌정 파괴 시도에 면죄부를 주는 위험한 행위일 수 있다.
우원식의 개헌 제안이 진정으로 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정치적 계산에 따른 것인지는 앞으로의 행보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내란 세력의 완전한 청산과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과제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윤석열 파면 이후 가야 할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