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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십자가에 매달린 이덕구, 우리가 외면한 4.3의 진실

양상현 기자 2025. 4. 7. 03:21

'피해자' 담론을 넘어 항쟁의 본질을 마주해야 할 때


관덕정 광장에 십자가 형틀에 매달린 한 청년의 시신. 카키색 허름한 일군복 차림의 초라한 모습. 한쪽 입귀에서 흘러내린 핏물 줄기가 엉겨 있지만, 표정은 잠자는 듯 평온했다. 그리고 집행인이 앞가슴 주머니에 일부러 꽂아놓은 숟가락 하나. 그 숟가락이 시신을 조롱하고 있었으나, 그것을 보고 웃는 사람은 없었다.

1949년 6월 8일, 제주 관덕정 광장에 전시된 이덕구의 주검이다. 29세의 나이로 경찰과 교전 중 전사한 그는 제주 4.3 항쟁을 이끈 인민유격대 사령관이었다. 철저한 사회주의자였던 그는 미군철수, 단독선거 반대, 이승만 타도를 외치며 무장봉기를 이끌었다.

오늘날 제주 4.3은 '국가폭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라는 피해 담론으로 주로 기억된다. 물론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무고한 3만여 명의 제주도민이 국가폭력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피해 담론만으로는 4.3의 본질에 접근할 수 없다. 이덕구와 인민유격대의 투쟁을 빼고서는 4.3 항쟁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

이덕구는 왜 무장투쟁을 선택했을까? 그는 단순한 '빨갱이'가 아니었다. 그는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이 추진하던 남한 단독정부 수립이 한반도의 영구 분단을 가져올 것이라 확신했다. 그에게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은 외세와 결탁한 반민족적 세력이었다. 그는 통일조선을 꿈꾸었고, 그 꿈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이덕구의 투쟁은 반독재, 반외세, 반자본주의, 통일의 정신을 담고 있다.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다. 한반도는 여전히 분단되어 있고, 외세의 영향력은 줄어들지 않았으며, 독재와 자본의 횡포는 형태만 바꾸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덕구와 같은 투사들의 이야기를 역사에서 지워왔다. 그들은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매도되었고, 그들의 투쟁은 '폭동'이라는 이름으로 왜곡되었다. 심지어 4.3 특별법이 제정되고 국가 차원의 사과가 이루어진 이후에도, 우리는 이덕구와 같은 투사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조명하지 않았다.

물론 이덕구와 인민유격대를 국가유공자로 인정하라는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들 자신도 바라지 않았을 것이며, 현 체제에서는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의 투쟁을 역사에서 지우거나 왜곡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꿈꾸었던 세상, 그들이 목숨을 바쳐 지키고자 했던 가치를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관덕정 광장에 십자가에 매달린 이덕구의 모습은 예수의 수난을 연상시킨다. 집행인의 실수였는지 장난이었는지 모르지만, 그 상징성은 강렬하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위한 희생이었다. 그의 가슴에 꽂힌 숟가락은 그를 조롱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것을 보고 웃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은 그의 죽음 앞에서 만감이 교차하는 듯 심란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날 우리는 4.3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단순히 '국가폭력의 희생자'로서가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투쟁했던 이들의 이야기로 기억해야 한다. 이덕구와 인민유격대의 투쟁은 실패했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꿈꾸었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반독재, 반외세, 반자본주의, 통일의 정신. 이것이 우리가 계승해야 할 4.3 항쟁의 참뜻이다. 이덕구의 죽음을 단순한 역사의 한 페이지로 넘기지 말고, 그가 꿈꾸었던 세상을 향한 우리의 책임을 되새겨야 한다.

관덕정 광장에 십자가에 매달린 이덕구의 모습은 75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 세상을 꿈꾸는가? 그 꿈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덕구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는 것은 오롯이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