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에서 울려 퍼진 '님을 위한 행진곡'... 광화문 광장의 마지막 집회"
파면 이후 첫 집회, 줄어든 인원에도 비 맞으며 끝까지 함께한 시민들
봄비가 내리는 광화문 광장. 파면 선고 다음 날인 5일, 광장은 전날의 열기와 달리 한산했다. 그러나 비를 맞으며 자리를 지킨 시민들의 눈빛은 더욱 강렬했다. 2시간 30분 동안 한 명도 자리를 떠나지 않은 채, 그들은 승리의 기쁨보다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제는 파면 선고를 들으며 눈물은커녕 울컥하지도 않았는데, 오늘은 달랐어요." 집회에 참석한 김모씨(42)는 젖은 얼굴을 훔치며 말했다. "80년 광주항쟁 영상이 나오고 '님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부르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어요. 우리가 이겼다는 실감이 그제서야 났던 것 같아요."
이날 집회에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사진과 함께 "시민 여러분 계엄군들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총을 들고 빨리 이쪽으로 와주십시오"라는 당시 시민군의 호소가 담긴 녹음이 상영됐다. 이에 참가자들은 자연스럽게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고, 많은 이들이 빗속에서 깃발을 흔들며 눈물을 흘렸다.
"광주항쟁이 제가 데모꾼으로 살게 해준 원동력입니다." 시민단체 활동가 박모씨(38)는 "지난 넉 달 동안 이를 갈며 거리에서 살았던 건 광주시민군들에게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고 싶어서였다"며 "이제 다시 시작이다. '윤석열들'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집회는 윤석열 파면 이후 첫 집회로, 정리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주최 측에 따르면 전날 수십만 명이 모였던 것과 달리 이날은 약 5천여 명 정도가 참석했다. 그러나 참석자들의 결의는 오히려 더 단단해 보였다.
"광장에서 계속 보게 될 시민보다 오늘 보는 게 마지막인 시민이 더 많을 것 같아요." 집회 참가자 이모씨(29)는 "넉 달 동안 함께 싸울 수 있어서 행복했다"며 "언젠가 더 큰 규모로 광장에서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한다"고 말했다.
비가 내리는 광장에서 우산을 나눠 쓰며 서 있던 대학생 최모씨(22)는 "8년 사이 정권을 두 번이나 탄핵한 우리가 착취, 불평등, 기후위기 체제인들 탄핵하지 못할까요?"라며 "오늘 '님을 위한 행진곡'을 같이 부른 기억을 간직하며 살아가다 보면 광장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희망을 전했다.
집회 주최 측인 '윤석열 퇴진 비상행동' 관계자는 "파면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공화국의 민주주의는 관용으로 건설, 유지되지 않는다는 걸 역사에 확실히 남길 기회"라고 강조했다. 이어 "내란 세력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처벌이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위한 시민들의 감시와 행동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집회 현장에는 '내란 세력 청산하라', '윤석열 구속하라', '국민의힘 해산하라'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이 여전히 눈에 띄었다. 그러나 전날과 달리 승리의 기쁨보다는 앞으로의 과제에 대한 고민이 더 많이 느껴졌다.
80대로 보이는 한 노인은 "1980년 광주, 1987년 6월 항쟁, 2016년 촛불혁명, 그리고 2025년 4월 혁명까지... 우리 국민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싸워왔다"며 "이번 승리가 민주주의의 완성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비가 더 세차게 내리기 시작하자 집회는 예정보다 일찍 마무리됐다. 참가자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애쓰셨습니다"라는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승리의 기쁨과 함께 새로운 싸움을 위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
광화문 광장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이날 빗속에서 함께 부른 '님을 위한 행진곡'의 울림은 참가자들의 가슴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더 큰 변화를 위해 다시 모일 그날을 기약하며, 그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