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권한대행의 월권, 민주주의의 위기신호
- 한덕수의 헌법재판관 지명이 드러내는 헌정질서의 균열
민주주의는 권력의 제한과 견제를 통해 작동한다. 특히 임시적으로 권한을 위임받은 자의 권력 행사에는 더욱 엄격한 제한이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지명은 이러한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한 사례로, 우리 헌정질서에 심각한 균열을 가져올 수 있는 위험한 선례다.
'새치기'라는 표현은 이번 사태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낸다. 국민이 선출하지 않은, 따라서 민주적 정당성이 결여된 임시직 권한대행이 60일 후 선출될 차기 대통령의 고유 권한을 선점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행정적 결정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다. 6년 임기의 헌법재판관을 60일짜리 권한대행이 지명하는 것은 그 자체로 불균형하고 부적절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지명된 인사의 배경이다. 이완규 법제처장은 12.3 비상계엄 다음날 안가회동에 참석했다는 의혹을 받는 인물이다. 내란 혐의로 고발된 수사 대상자를 헌법재판소라는 권력 기관으로 '도피'시키려는 시도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헌법재판소가 향후 내란 관련 사건을 다룰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사법 정의의 근간을 훼손할 수 있는 위험한 시도다.
이번 사태는 우리에게 '권한대행'이라는 제도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권한대행 제도는 국정의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임시적 장치다. 그것은 결코 적극적인 국정 운영이나 중요 인사 결정을 위한 것이 아니다. 특히 조기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차기 대통령이 곧 선출될 것이 확실한데도 장기 임기의 중요 인사를 서둘러 지명하는 것은 권한대행 제도의 취지를 완전히 벗어난 행위다.
헌법학계의 통설에 따르면, 권한대행은 '소극적 인사권'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는 국정 운영의 연속성을 위해 필수적인 인사만을 결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덕수 권한대행이 국방부 장관, 행정안전부 장관 등 핵심 안보 부처의 수장을 임명하지 않으면서도, 헌법재판관은 서둘러 지명한 것은 명백한 모순이다. 이는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에 대한 자의적 해석으로, 헌법적 관행과 원칙을 무시한 처사다.
이번 사태가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그것이 단순한 인사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의 민주적 가치와 헌정 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라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권력의 평화로운 이양과 적절한 견제와 균형을 통해 유지된다. 그러나 한덕수 권한대행의 행보는 이러한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훼손하고 있다.
더욱이 이번 지명이 내란 혐의자를 헌법재판소로 '도피'시키려는 정치적 의도를 가진 것이라면, 이는 단순한 월권을 넘어 사법 정의를 훼손하는 심각한 문제다. 헌법재판소는 헌법 수호의 최후 보루로, 그 구성원의 공정성과 독립성은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내란 혐의를 받는 인물이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된다면, 헌법재판소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심각하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는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의 원칙과 헌정 질서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시험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권한대행의 월권에 대한 적절한 견제 장치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이는 향후 유사한 상황에서 더 심각한 헌정 질서의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덕수 권한대행은 지금이라도 헌법재판관 지명을 철회하고, 그 권한을 차기 대통령에게 넘겨야 한다. 그것이 헌법 정신을 존중하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지키는 길이다. 권력은 그 한계를 인식할 때 비로소 정당성을 얻는다. 이번 사태가 우리 헌정사에 어떤 선례를 남길지, 그리고 우리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어떻게 시험할지, 모든 국민이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