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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덕수의 헌법재판관 지명이 보여주는 권력의 오만과 위험성

양상현 기자 2025. 4. 8. 16:00

권한대행의 월권, 민주주의의 경계선을 넘다

권력의 본질은 그 한계를 인식하는 데 있다. 특히 임시적으로 부여받은 권한일수록 더욱 신중하고 절제된 행사가 요구된다. 그러나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지명은 이러한 권력의 기본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한 사례다. 60일짜리 권한대행이 6년 임기의 헌법재판관을 지명한 것은 단순한 행정적 결정이 아닌,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단순한 사법기관이 아니다. 그것은 헌법 수호의 최후 보루이자, 국가권력의 남용을 견제하는 최종 안전장치다. 특히 대통령 탄핵이라는 전례 없는 헌정 위기를 겪은 지금, 헌법재판소의 구성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런 상황에서 권한대행이 차기 대통령의 고유 권한을 선점하는 것은 단순한 '알박기'를 넘어 헌정 질서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한덕수 권한대행의 논리적 모순은 더욱 심각하다. 그는 국가적 위기 상황을 이유로 국방부 장관, 행정안전부 장관 등 핵심 안보 부처의 수장을 임명하지 않으면서도, 헌법재판관은 지체 없이 지명했다. 이는 '소극적 인사권'이라는 권한대행의 헌법적 한계를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이를 무시하는 이중적 태도다.

더욱 의문스러운 것은 여야 합의로 국회에서 선출된 마은혁 헌법재판관은 임명하지 않으면서,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은 서둘러 지명한 점이다. 이러한 선택적 권한 행사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다. 특히 지명된 인사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가까운 인물이라는 점은 이번 지명의 정치적 의도를 더욱 의심스럽게 만든다.

이완규 법제처장에 대한 의혹도 간과할 수 없다. 계엄 다음날 삼청동 안가 회동 후 휴대전화를 교체했다는 의혹이 있는 인물을 헌법재판관으로 지명하는 것은 내란 사태의 진상 규명을 방해하려는 시도로 비칠 수 있다. 헌법재판소가 향후 내란 관련 사건을 다룰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사법 정의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시도다.

권한대행 제도의 본질은 국정의 공백을 최소화하는 데 있다. 그것은 결코 차기 대통령의 권한을 선점하거나, 정치적 영향력을 연장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특히 조기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2개월 후면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될 것이 확실한데도 6년 임기의 헌법재판관을 서둘러 지명하는 것은 민주적 정당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다.

헌정사의 관점에서 보면, 이번 사태는 우리 헌법 체계의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그리고 그 한계를 넘어설 경우 어떤 견제 장치가 작동하는지를 확인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국회의 권한쟁의심판 청구와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은 이러한 헌법적 검증 과정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더 넓은 맥락에서, 이번 사태는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시험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권력의 평화로운 이양과 권한의 적절한 행사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다. 특히 헌정 위기 상황에서 이러한 원칙이 더욱 엄격하게 지켜져야 함에도, 한덕수 권한대행의 행보는 이러한 민주주의적 가치를 경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헌법재판관 지명 논란은 단순한 인사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헌정 질서와 민주주의의 본질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권한대행이라는 임시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 차기 정부의 핵심 인사를 결정하는 것이 과연 민주주의의 원칙에 부합하는가? 이것이 선례가 된다면, 향후 유사한 상황에서 어떤 혼란이 초래될 수 있는가?

한덕수 권한대행은 지금이라도 헌법재판관 지명을 철회하고, 그 권한을 차기 대통령에게 넘겨야 한다. 그것이 헌법 정신을 존중하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지키는 길이다. 권력은 그 한계를 인식할 때 비로소 정당성을 얻는다. 한덕수 권한대행의 선택이 우리 헌정사에 어떤 족적을 남길지, 역사는 반드시 기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