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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권한대행의 월권인가, 불가피한 선택인가

양상현 기자 2025. 4. 8. 16:09

한덕수의 헌법재판관 지명이 드러내는 헌정질서의 취약성


민주주의는 규칙의 체계다. 누가, 언제, 어떤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지에 관한 명확한 규칙이 없다면, 민주주의는 작동할 수 없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지명 논란은 이러한 규칙이 얼마나 취약한지, 그리고 위기 상황에서 얼마나 쉽게 도전받을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민주당 김병주 최고위원의 '새치기'라는 표현은 이번 사태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낸다. 60일 후면 새 대통령이 선출될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임시직 권한대행이 6년 임기의 헌법재판관을 지명한 것은 차기 대통령의 고유 권한을 선점한 것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헌법학계의 중론이 "권한대행의 권한은 최소한의 현상 유지 정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지명은 그 한계를 넘어선 것으로 볼 여지가 크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지명된 인사의 배경이다. 이완규 법제처장은 12.3 비상계엄 다음날 안가회동에 참석했다는 의혹을 받는 인물이다. 내란 혐의로 고발된 수사 대상자를 헌법재판소라는 권력 기관으로 '도피'시키려는 시도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헌법재판소가 향후 내란 관련 사건을 다룰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사법 정의의 근간을 훼손할 수 있는 위험한 시도다.

물론 한 권한대행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헌법재판소의 공백은 국가 운영에 심각한 차질을 빚을 수 있다. 특히 경제부총리 탄핵안과 경찰청장 탄핵심판 등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헌재의 정상적 기능 유지는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이러한 실용적 논리가 헌정질서의 근본 원칙을 뛰어넘을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이번 사태는 우리 헌법 체계의 중요한 맹점을 드러낸다.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에 대해 헌법과 법률이 명확한 규정을 두지 않은 것은 심각한 제도적 결함이다. 이로 인해 위기 상황에서 권한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정치적 해석과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커진다. 이는 헌정질서의 안정성을 해치는 요소다.

더 넓은 맥락에서, 이번 사태는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시험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권력의 평화로운 이양과 권한의 적절한 행사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다. 특히 헌정 위기 상황에서 이러한 원칙이 더욱 엄격하게 지켜져야 함에도, 현실 정치의 논리가 이를 압도하는 모습은 우려스럽다.

한 권한대행의 결정이 "헌재 결원 사태 방지와 국론 분열 악화 방지"를 위한 것이라는 설명은 그 의도의 순수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좋은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특히 헌정질서와 같은 근본 원칙이 관련된 사안에서는 더욱 그렇다. 단기적인 국정 운영의 효율성을 위해 장기적인 헌정질서의 안정성을 희생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닐 수 있다.

이번 논란은 권한대행 제도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권한대행 제도는 국정의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임시적 장치다. 그것은 결코 적극적인 국정 운영이나 중요 인사 결정을 위한 것이 아니다. 특히 조기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차기 대통령이 곧 선출될 것이 확실한데도 장기 임기의 중요 인사를 서둘러 지명하는 것은 권한대행 제도의 취지를 완전히 벗어난 행위로 볼 수 있다.

결국 이번 헌법재판관 지명 논란은 우리 사회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민주주의는 단순한 다수결이 아니라 권력의 제한과 견제, 그리고 적절한 절차를 통해 작동한다. 이러한 원칙이 위기 상황에서도 지켜질 때, 우리의 민주주의는 한 단계 더 성숙해질 수 있다.

한 권한대행의 결정이 옳은지 그른지는 역사가 판단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번 사태가 우리 헌정질서의 근본 원칙에 대한 깊은 성찰과 논의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논의의 결과가 앞으로의 유사한 상황에서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권한대행의 월권인가, 불가피한 선택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 민주주의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