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권한대행의 월권과 내란의 그림자
한덕수의 헌법재판관 지명이 드러내는 미완의 헌정 복원
권력의 공백기는 민주주의의 취약성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대통령이 파면된 후 60일간의 과도기,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여러 시도를 목격하고 있다. 한덕수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지명은 그 중에서도 가장 노골적인 헌정질서 도전이다.
권한대행이라는 지위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국정의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임시적 장치다. 결코 차기 대통령의 권한을 선점하거나, 장기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특히 60일 후면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될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6년 임기의 헌법재판관을 서둘러 지명하는 것은 권한대행 제도의 취지를 완전히 벗어난 행위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한 권한대행의 이중적 태도다. 불과 몇 달 전 그는 "권한대행의 헌법기관 임명은 자제하는 게 헌법정신"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에 대한 임명은 거부하면서,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은 서둘러 지명했다. 이러한 이중잣대는 원칙이 아닌 정치적 계산에 따른 결정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박근혜 탄핵 과정에서 황교안 권한대행도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은 임명하지 않았다. 이는 단순한 관행이 아니라 헌정질서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었다.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권한대행이 장기적으로 국가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인사를 임명하는 것은 국민 주권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지명의 문제는 단순한 절차적 정당성을 넘어선다. 지명된 인물이 누구인가? 이완규 법제처장은 12.3 내란 시도와 관련해 심각한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내란 시도가 실패한 직후 대통령 안가에서의 비밀 회동, 핸드폰 교체와 증거 인멸 의혹 등은 그가 단순한 방관자가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헌법재판소는 향후 내란 관련 사건을 다룰 가능성이 높은 기관이다. 내란 의혹을 받는 인물이 그 재판관이 된다면, 이는 '누구도 자신의 사건에서 재판관이 될 수 없다'는 법의 기본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이는 단순한 인사 문제가 아니라 사법 정의의 근간을 훼손하는 심각한 문제다.
한 권한대행 자신도 내란 공범이라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다. 비상계엄 해제 이후에도 계엄문건에 서명했다는 사실, 내란 관련 특검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행태 등은 그가 진상 규명보다는 은폐에 더 관심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그의 헌법재판관 지명은 내란 세력의 수명을 연장하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는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대통령 파면으로 내란은 정말 종식되었는가? 아니면 여전히 그 그림자가 우리 사회를 덮고 있는가? 한 권한대행의 행보를 보면, 내란의 종식이 아닌 지속이 더 현실적인 답변처럼 보인다. 내란의 주역이 물러났지만, 그 공범들은 여전히 권력의 중심부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제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회는 헌정질서 수호의 최후 보루로서, 권한대행의 월권과 내란 세력의 지속적인 도전에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 한덕수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 추진은 그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공세가 아니라, 헌정질서 회복을 위한 필수적인 조치다.
물론 탄핵은 중대한 결정이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그러나 헌정질서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 있을 때, 과도한 신중함은 오히려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말처럼, 때를 놓친 대응은 헌정질서 회복의 기회를 영영 놓치게 할 수 있다.
한덕수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지명은 단순한 인사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가 내란의 그림자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를 시험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이 도전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우리 민주주의의 성숙도와 회복력이 판가름 날 것이다.
60일의 과도기가 끝나면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동적으로 헌정질서의 완전한 회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진정한 회복은 내란의 진상이 철저히 규명되고, 관련자들이 응당한 책임을 질 때 비로소 가능하다. 한덕수 권한대행의 월권과 내란의 그림자가 드리운 지금, 우리는 미완의 헌정 복원 과정 한가운데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