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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빈집, 도시의 상처인가 새로운 기회인가

양상현 기자 2025. 4. 9. 12:04

방치된 공간의 재발견을 통한 도시 재생의 가능성


깨진 유리창 하나가 방치되면 그 건물 전체가, 나아가 동네 전체가 황폐해진다는 '깨진 유리창 이론'은 도시 환경에서 방치된 공간이 갖는 파급력을 잘 보여준다. 전국 곳곳에 늘어나는 빈집들은 단순한 비어있는 건물이 아니라 도시의 활력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정부가 빈집 정비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검토하고 지자체의 직권 철거 권한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은 이런 맥락에서 시의적절하다.

그러나 빈집 문제의 해법을 단순히 '철거'에서만 찾는 것은 아쉬운 접근이다. 빈집은 도시의 상처이자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이기도 하다. 철거 일변도의 정책보다는 빈집의 특성과 지역 맥락에 맞는 다양한 재활용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더 지혜로운 접근법이 아닐까.

현재 지자체의 빈집 정비 실행률이 계획 대비 34%에 그치는 현실은 제도적 한계를 보여준다. 소유주 불명, 상속 분쟁, 재정적 부담 등 다양한 이유로 방치되는 빈집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강제 철거와 같은 강력한 수단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와 함께 빈집을 지역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는 창의적 접근도 병행되어야 한다.

전남 순천의 한 마을에서 10년 넘게 방치된 빈집이 마을 도서관으로 탈바꿈한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철거 대상이었던 공간이 주민들의 소통과 배움의 장소로 재탄생한 것이다. 이처럼 빈집은 단순한 폐허가 아니라 지역 커뮤니티의 필요에 맞게 변모할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빈집 플랫폼'은 이런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빈집 소유주와 활용 희망자를 연결하는 이 시스템은 시장 기반의 해결책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현재의 플랫폼은 단순한 매매와 임대 정보 제공에 그치고 있어 보다 적극적인 중개와 지원 기능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빈집 문제의 근본 원인은 인구 감소와 도시 쇠퇴라는 구조적 변화에 있다. 특히 지방 중소도시의 경우, 청년 인구의 유출로 인해 빈집은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빈집 정비는 단순한 환경 개선을 넘어 지역 활성화와 인구 유입 전략과 연계되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민간 사업자에게 용적률과 건폐율 완화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은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이러한 개발 인센티브가 단순한 부동산 개발로 이어지지 않도록 지역 특성과 주민 필요를 반영한 가이드라인이 함께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빈집 재활용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청년 창업 공간, 문화예술 창작소, 공유 주택, 도시 농업 공간 등 지역 맥락과 필요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변모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제도적 지원과 함께 지역 주민과 시민사회의 창의적 참여가 결합되어야 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빈집 재활용이 단순한 물리적 공간 활용을 넘어 지역 공동체 회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민들이 함께 빈집을 리모델링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잃어버렸던 이웃 간의 연대와 소통이 복원될 수 있다. 이는 물리적 환경 개선 이상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다.

물론 모든 빈집이 재활용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안전상의 위험이 크거나 구조적으로 복구가 불가능한 빈집은 과감히 철거하고 그 부지를 주차장이나 소공원, 텃밭 등 공공 용도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요한 것은 일률적인 접근이 아니라 각 빈집의 상태와 입지, 지역 맥락에 맞는 맞춤형 해법을 찾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빈집 정비 특별법이 단순한 철거 촉진법이 아니라 도시 재생과 지역 활성화의 새로운 전기가 되기를 바란다. 빈집은 도시의 상처이자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이다. 이 공간들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우리 도시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다.

깨진 유리창을 단순히 교체하는 것을 넘어, 그 창을 통해 새로운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빈집이라는 도시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 건강하고 활기찬 도시 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