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파면된 대통령의 그림자 속 춤추는 국민의힘
헌법 수호는 어디로, 윤석열 눈치 보기에 바쁜 대선 주자들
헌법재판소 재판관 8명 전원일치. 지난 4일 오전 11시22분, 대한민국 헌정사상 두 번째로 현직 대통령이 파면됐다. 위헌적 비상계엄 선포라는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에 내려진 준엄한 판결이다. 그러나 국민의힘 대선 주자들의 행보를 보고 있자면, 마치 다른 나라 이야기라도 되는 양 이 사안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파면된 대통령은 오히려 한남동 관저에서 '왕의 귀환'이라도 된 듯 국민의힘 지도부와 대선 주자들을 줄줄이 불러들이고 있는 모양새다. 더 황당한 것은 이들이 마치 조공이라도 바치러 가듯 관저로 달려가는 모습이다. 이철우 경북지사는 윤 전 대통령과의 면담 내용을 SNS에 자랑스럽게 공개했다. "대통령 되면 사람을 쓸 때 가장 중요시 볼 것은 충성심"이라는 조언까지 받았다니, 이게 민주공화국의 정치인이 할 말인가?
헌법을 유린한 대통령에게 '충성심'을 강조받는 장면을 자랑스럽게 공개하는 현실이 소름 돋는다. 충성의 대상은 헌법과 국민이어야 하지 않은가? 이런 행태는 마치 봉건시대 군주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신하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나경원, 윤상현, 김문수 등 대선 주자들도 관저 방문이나 통화를 통해 '윤심'을 확인받기에 바쁘다. 이들에게 비상계엄과 헌법 유린은 중요한 문제가 아닌 모양이다. 오히려 파면된 대통령의 지지를 얻어 극우 지지층의 표심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인 듯하다.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비상계엄 당시 해제결의안 의결에 적극 나섰던 한동훈 전 대표의 행보다. 출마 선언에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언급은 철저히 회피한 채 이재명 전 대표 공격에만 집중했다. 계엄 해제에 앞장섰던 그가 정작 계엄의 주범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모순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것이 원칙과 소신을 중시한다는 정치인의 모습인가?
국민의힘은 윤석열 제명·출당조치도 거부하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국민 50%가 "출당시키고 정치적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좋다"고 응답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오히려 탄핵에 찬성한 의원들을 향한 비난이 더 거세다. 헌법을 지키기 위해 소신 있는 표결을 한 의원들이 당내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히는 기이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행태는 국민의힘이 '헌법 수호 정당'이 아닌 '윤석열 개인 정당'으로 전락했음을 보여준다. 헌법재판소의 판결보다 파면된 대통령의 '윤심'이 더 중요한 정당. 이것이 과연 건강한 민주주의 정당의 모습인가?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행태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다는 점이다. 비상계엄이라는 헌정 질서 파괴 행위에 대한 명확한 평가와 반성 없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선거 국면으로 넘어가는 것은 위험한 선례를 남긴다. 이는 미래의 권력자들에게 "헌법을 위반해도 큰 문제가 없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국민의힘 대선 주자들은 이재명 전 대표 비난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물론 상대 진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선거의 당연한 과정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진영에서 벌어진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상대만 비난하는 것은 이중잣대가 아닌가?
진정한 보수 정당이라면 헌법과 법치를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의힘 대선 주자들은 먼저 비상계엄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그것이 위헌적 행위였는지, 아니었는지. 만약 위헌이었다면 그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이런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지 않고 선거를 치르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다.
파면된 대통령의 그림자 속에서 춤추는 국민의힘 대선 주자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국가의 미래가 아닌, 극우 지지층의 표심과 '윤심'이다. 이런 정당에 과연 국가의 운명을 맡길 수 있을까? 헌법보다 '충성심'을 중시하는 정치인들에게 헌법 수호를 기대할 수 있을까?
국민의힘이 진정한 보수 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윤석열이라는 개인에 대한 맹목적 충성에서 벗어나 헌법적 가치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파면된 대통령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나 현재의 행보를 보면, 국민의힘은 여전히 그 그림자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