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은 어디에? 미래학교의 불편한 진실
전자기기만 늘리고 재생에너지는 외면하는 교육 현장의 모순
아침 등교 시간, 화려한 전광판이 아이들을 맞이한다. 복도마다 설치된 전자게시판은 쉴 새 없이 정보를 내뿜고, 교실 안에는 전자칠판이 벽면을 장식한다. '그린스마트 미래학교'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한 학교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 풍경 앞에서 왜 마음이 불편해지는 걸까?
지난주 한 중학교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복도를 걷다 우연히 전기계량기를 발견했는데, 숫자가 빠르게 올라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교감 선생님은 "리모델링 이후 전기 사용량이 30% 가까이 늘었다"며 "예산 문제로 걱정"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도 학교 옥상이나 주차장에 태양광 설비를 설치할 계획은 없다고 했다. 예산이 없다는 이유였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그린스마트 미래학교'의 현주소다. '스마트'는 있되 '그린'은 찾아보기 어렵다. 첨단 기기를 도입하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으면서, 그 기기들이 소비하는 전력을 친환경적으로 생산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이런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탄소중립을 가르친다는 것은 얼마나 모순적인가.
교육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이루어진다. 교육학에서는 이를 '잠재적 교육과정'이라고 부른다. 교과서에 적힌 내용보다 학교라는 공간이 보여주는 가치와 태도가 아이들에게 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전기를 마구 소비하는 학교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에너지 절약의 중요성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포천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아이들에게 환경보호를 가르치면서도 학교 자체가 환경에 부담을 주는 구조라 항상 모순을 느낀다"며 "수업에서 태양광 발전의 중요성을 설명하다가 문득 '우리 학교는 왜 태양광이 없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할 말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이렇게 도입된 첨단 기기들의 활용도가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이다. 한 고등학교를 방문했을 때, 복도에 설치된 전자게시판 중 절반은 꺼져 있었고, 나머지도 단순히 날짜와 시간만 보여주고 있었다. 수천만 원을 들여 설치한 장비가 결국 비싼 시계 역할만 하고 있는 셈이다.
교실 안 전자칠판도 마찬가지다. 많은 교사들이 복잡한 사용법과 잦은 오류 때문에 기존 칠판이나 프로젝터를 더 선호한다. 한 중학교 교사는 "전자칠판을 켜고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데만 5분이 걸리는데, 수업 중 그 시간이 아깝다"며 "결국 옆에 있는 일반 칠판을 더 많이 사용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첫째, 학교 시설 개선 사업에서 '그린'을 진정성 있게 반영해야 한다. 전자기기 도입과 함께 반드시 재생에너지 설비도 함께 계획해야 한다. 학교 옥상, 주차장, 운동장 가장자리 등 태양광 패널을 설치할 수 있는 공간은 많다.
둘째, 기기 도입 전 실제 교육 현장의 필요성을 면밀히 조사해야 한다. 화려해 보이지만 실용성이 떨어지는 장비들은 과감히 줄이고, 정말 필요한 곳에 예산을 집중해야 한다.
셋째,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는 에너지 전환 프로젝트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학교의 에너지 사용량을 모니터링하고, 절약 방안을 제안하며, 태양광 발전량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체험형 탄소중립 교육이 될 것이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는 이런 시도를 시작했다. 학생들이 주도하는 '에너지 전환 동아리'를 만들어 학교의 전력 소비량을 분석하고, 교내 태양광 설치를 위한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했다. 비록 작은 규모지만,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에너지 문제의 복잡성과 해결 방안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미래를 가르치려면, 학교부터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환경교육 전문가의 이 말은 오늘날 우리 교육 현장에 던지는 중요한 화두다. 화려한 전자기기 뒤에 숨은 탄소 발자국을 직시하고, 진정한 '그린스마트' 학교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 그것이 미래 세대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육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