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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 속 절망"... 불법기숙사에 갇힌 이주노동자들의 현실

양상현 기자 2025. 4. 13. 17:25

사업장 변경 신청조차 가로막는 관료적 장벽... "연간 3천명 사망하는 '내부식민지' 한국"



녹슨 철문을 열자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인천 서구의 한 공장 뒤편, 낡은 컨테이너 안에는 좁은 공간에 이층침대 네 개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창문은 작은 환기구 하나가 전부였고, 겨울에는 얼어붙고 여름에는 찜통이 되는 이곳이 미얀마 출신 지노이(31·가명)씨와 동료 7명의 '집'이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기대가 컸어요. 하지만 이런 곳에서 살아야 한다는 걸 알았을 때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지노이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지난주 인천 서부 고용지원센터를 찾아 불법기숙사를 이유로 사업장 변경을 신청하려 했지만, 담당 공무원은 접수조차 거부했다.

"사업주와 얘기해 봤느냐, 불법이라는 증빙 자료를 가져오라는 말만 반복했어요. 장관 고시로 직권 변경이 가능한데도 말이죠." 지노이씨와 동행한 이주노동자지원센터 김모 자원봉사자(42)는 분통을 터뜨렸다. "한국인인 제가 동행했는데도 이런 태도였으니, 이주노동자 혼자 갔다면 어땠을지 상상도 하기 싫습니다."

고용노동부 지침에 따르면, 취업비자(E9)로 입국한 이주노동자가 불법기숙사 문제로 일터 변경을 신청할 경우, 사업주 동의 없이도 직권으로 사업장 변경을 허가해야 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 지침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다.

"지침은 있으나 마나입니다. 담당자들은 가능하면 사업장 변경을 해주지 않는 방향으로 업무를 처리합니다." 이주노동자인권연대 박모 활동가(38)는 "이는 이주노동자를 값싼 노동력으로만 보는 착취 구조의 일부"라고 지적했다.

경기도 안산의 한 공단 지역. 공장 뒤편으로 난 좁은 골목을 따라가자 컨테이너와 가건물이 즐비했다. 이곳에 사는 베트남 출신 응우옌씨(28)는 "화장실과 샤워실을 여덟 명이 함께 쓰는데, 물이 새고 곰팡이가 피어 있다"며 "회사에 개선을 요구했지만 '싫으면 나가라'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경기도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도내 농어업 사업장에만 불법기숙사가 1,500개 정도 존재한다. 공장 지역은 이보다 5배 이상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국적으로는 150만 명에 달하는 이주노동자 중 상당수가 불법기숙사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주노동자들의 주거환경은 심각한 인권 문제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자문위원인 이모 교수(54)는 "2023년 인권위 보고서에 따르면, 한 해 이주노동자 사망자가 3,000명이 넘는데, 이는 열악한 주거환경과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사람이 살아서는 안 되는 움막이나 돼지우리만도 못한 환경에서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하니 이런 비극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천의 한 공단 지역에서 만난 네팔 출신 라즈(35)씨는 "한국은 겉으로는 선진국이지만, 우리에게는 내부식민지나 다름없다"며 "우리의 노동으로 한국 경제가 돌아가는데, 기본적인 주거권조차 보장받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초저출산 고령사회로 진입한 한국은 올해도 수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일 예정이다. 그러나 이들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정책은 여전히 미흡하다. 이주노동자지원연합 최모 대표(47)는 "노동부와 지자체는 불법기숙사에 대한 전수조사를 즉각 실시해야 한다"며 "주거환경 개선 없이는 이주노동자 인권 보장은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지노이씨는 결국 사업장 변경 신청을 하지 못한 채 컨테이너 기숙사로 돌아갔다. 그의 표정에는 체념과 분노가 교차했다. "우리도 인간입니다. 단지 더 나은 삶을 위해 한국에 왔을 뿐인데, 이렇게 대우받는 게 정당한가요?"

인천 서부 고용지원센터 관계자는 "모든 사례를 개별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며, 명백한 불법 사항이 확인되면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해명했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성서의 뿌리는 출애굽 사건입니다. 억압과 착취에 맞서 자유와 평등을 찾아 떠난 노예들의 이야기죠." 이주노동자인권운동가 김모씨(65)는 "오늘날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에게도 그런 출애굽의 정신이 필요하다"며 "그들의 기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