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법정 카메라 금지, 사법 정의의 사각지대를 묻다
전직 대통령 재판 촬영 불허 결정이 드러낸 법원의 이중 잣대
법정은 정의가 구현되는 신성한 공간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정의가 공정하게 집행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장치인 '투명성'이 가려질 때,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할까?
지난주 지귀연 재판장이 윤석열 전 대통령 공판에 대한 촬영을 불허한 결정은 단순한 절차적 판단을 넘어 사법부의 공정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역대 전직 대통령들의 재판은 하나같이 촬영이 허용되었다.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법정 모습은 국민들에게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그런데 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판만 다른 잣대가 적용되는가?
법원행정처의 한 관계자는 "재판 촬영 여부는 해당 재판부의 재량"이라고 설명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재량에도 일관성과 합리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특히 국가 최고 권력자였던 인물의 재판이라면 더욱 그렇다. 전례와 다른 결정을 내렸다면, 그에 합당한 이유가 제시되어야 마땅하다.
더 문제적인 것은 이번 촬영 불허 결정이 지귀연 재판장의 이전 행보와 맞물려 해석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는 앞서 윤 전 대통령의 구속취소 심문에서 구속기간을 날이 아닌 시간 단위로 계산하는 이례적인 해석을 내놓았다. 이른바 '지귀연 룰'이라 불리는 이 판단은 법조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것이었다.
한 법학교수는 "형사소송법상 구속기간 계산에 관한 관행과 판례가 있는데, 이를 벗어난 해석을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특정 피고인에게만 유리한 해석을 적용한다면 법 앞의 평등이라는 원칙이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재판장의 독립적 판단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판단이 일관성을 잃고 특정인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독립적 판단이 아닌 편파적 결정으로 비칠 위험이 있다. 사법부의 신뢰는 바로 이런 일관성과 공정성에서 비롯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권력자들의 재판은 늘 공정성 논란에 시달려왔다. 그래서 더욱 투명하게 진행될 필요가 있다. 카메라가 들어가지 못하는 법정은 자칫 밀실 재판이라는 의심을 살 수 있다. 특히 내란 혐의라는 중대 사안에서는 더욱 그렇다.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법정 촬영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사법 과정의 투명성을 보장하는 장치"라며 "국민의 알 권리와 사법부의 신뢰 구축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라고 강조했다.
사법부의 결정이 정치적 편향성을 띤다는 의심이 커질수록, 법치주의의 근간은 흔들린다. 법원이 정의의 전당이 아닌 특정 세력의 보호막으로 인식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위기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단순한 절차적 결정이 아닌, 사법부의 공정성에 대한 시험대다.
한 법조인은 "사법부의 신뢰는 하루아침에 쌓이는 것이 아니라 일관된 원칙과 공정한 판단의 누적으로 형성된다"며 "특정 사건에서의 예외적 판단은 그동안 쌓아온 신뢰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법정 카메라의 렌즈는 단순히 피고인의 모습을 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법 정의가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지를 국민의 눈으로 확인하는 장치다. 그 렌즈가 가려질 때,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재판의 공정성을 믿어야 할까?
지금 사법부에 필요한 것은 특정인을 위한 예외적 판단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칙과 일관성이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대원칙이 흔들리는 순간, 사법부는 더 이상 정의의 보루가 아닌 불신의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다.
카메라가 들어가지 못하는 법정에서 과연 정의는 제대로 구현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결국 사법부 스스로가 내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