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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 나한의 미소, 포천 천해사에 봄이 오다

양상현 기자 2025. 4. 14. 15:37

부처님 이운점안·오백나한 점안법회 봉행... "지혜의 눈으로 불자들 가정 행복과 건강 기원"


지난 13일, 봄비가 갓 그친 포천시 소흘읍 죽엽산 자락, 천해사로 향하는 산길은 안개가 살짝 감돌고 있었다. 평소라면 고요함이 감도는 사찰이지만, 지난 12일만큼은 달랐다. 불기 2569년 음력 3월 15일, 부처님 이운점안과 오백나한 점안법회를 위해 모인 불자들과 스님들로 경내가 북적였다.

사찰 입구에서부터 은은한 목탁 소리와 함께 향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법당으로 향하는 길, 한 노보살이 허리를 굽혀 108배를 올리고 있었다. 80대로 보이는 그 할머니의 이마에는 땀이 맺혀 있었다.

"할머니, 뭐 그렇게 빌고 싶은 것이 많으세요?" 물었더니,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며 대답했다.

"큰아들은 잘 됐는데, 작은 아들이 안 돼서... 작은 아들을 위해 불공을 드리는 거야."

법당 안으로 들어서자 오백 개의 눈동자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각기 다른 표정과 자세로 앉아있는 나한상들은 마치 살아있는 듯 생동감이 넘쳤다. 어떤 나한은 웃고 있고, 어떤 나한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으며, 또 다른 나한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오백나한을 우리가 점안을 한다는 것은 눈을 떠서, 부처님 오백나한이 지혜의 눈을 가지고 우리 불자님들의 가정의 행복과 건강을 위해서 점안을 하게 되었습니다." 법운 주지스님의 설명이다. "나한은 부처님의 제자로, 깨달음을 얻은 성자를 의미합니다. 오백나한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이 세상에 나타난 분들이에요. 우리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죠."

오전 10시, 점안법회가 시작됐다. 태고종 경기북부종무원장 기원정사주지 대원스님과 총화종 경기북부 종무원장 서광사 정산스님이 증명 법사로 참여한 가운데, 법화종 영천성도사 주지 혜연스님이 어장을, 상법스님이 법고를 맡았다. 사부대중 150여 명이 참석한 법회는 엄숙하면서도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법당 안은 스님들의 염불 소리와 목탁 소리로 가득 찼다.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봄 햇살이 나한상의 얼굴을 비추며 신비로운 광채를 내뿜었다.

"이 나한상들은 각기 다른 표정을 지니고 있어, 불자들이 기도할 때마다 그들의 마음을 다독여줍니다." 법운 스님의 말이다. "오늘 점안법회를 통해 나한상에 새 생명이 깃들게 됩니다."

나한상 보수 작업은 지난해부터 이어졌다. 작업자들은 조심스럽게 먼지를 털어내고, 벗겨진 채색을 다시 입혔다. 오래된 나한상 중 일부는 균열이 있어 정교한 복원 작업이 필요했다.

"이 나한상들은 고려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우리 문화유산입니다." 문화재 전문가 김동수 씨의 설명이다. "각 나한상의 표정과 자세가 모두 달라 당시 조각가의 뛰어난 기술을 엿볼 수 있어요. 이번 복원 작업은 단순히 외형을 되살리는 것을 넘어, 그 속에 담긴 영적 의미를 되살리는 과정입니다."

복원 작업은 여러 단계로 진행됐다. 먼저 먼지와 이물질을 제거하고, 손상된 부위를 복원한 뒤, 벗겨진 채색을 다시 입혔다. 마지막으로 나한상의 재질을 보호하기 위한 특수 처리를 하고, 보존 환경을 개선했다.

법회에 참석한 신도 박모씨(53)는 "오백나한 복장보수불사는 불자로서 공덕을 쌓을 수 있는 최상의 복"이라며 "나한님께 불사 공덕을 지으면 의지가 굳고 지혜가 솟아나며 세세생생 헐벗지 않고 풍족하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법회가 끝난 후, 법운 주지스님은 "지속적으로 정진하면 부처님 가피가 함께 할 것"이라며, "포천지역 불자들의 평안과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이어 "나한상은 단순한 조각상이 아니라 우리 삶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이라며 "웃는 모습, 우는 모습, 고뇌하는 모습... 이 모든 것이 우리 인간의 모습이고, 나한상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라고 덧붙였다.

천해사를 나서는 길, 다시 그 노보살을 만났다. 그녀는 이제 108배를 마치고 나한상 앞에 앉아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평온함이 깃들어 있었다.

"새로 단장한 나한상 앞에서 기도하니 마음이 더 편안해요. 내 아들도 이 나한상처럼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기를..." 그녀의 말에서 어머니의 간절함이 느껴졌다.

천해사의 부처님 이운점안과 오백나한 점안법회는 단순한 의식을 넘어, 수행 포교 도량으로서의 면모를 새롭게 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번 법회를 통해 천해사는 포천 지역의 중요한 불교 문화 중심지로서 그 역할을 더욱 강화하게 됐다.

봄날의 천해사, 새롭게 점안된 부처님과 오백 나한의 미소는 찾아오는 이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전하고 있었다. 죽엽산 자락에 자리한 이 고요한 사찰은 앞으로도 많은 불자들의 기도와 정진의 장소로 그 역할을 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