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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세월호 10주기에 생각하는 안전의 가치

양상현 기자 2025. 4. 14. 21:13

'대충'이라는 이름의 재앙

지난주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았다. 10년이 흘렀지만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선명하다. 노란 리본이 바람에 흔들리던 모습, 전국을 뒤덮은 슬픔의 물결, 그리고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다섯 명의 이름들.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있다.

세월호 참사를 되돌아보면 한 단어가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대충'. 이 작은 단어가 얼마나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지, 우리는 너무나 큰 대가를 치르고 배웠다.

선주는 '대충' 화물을 실었다. 허용 적재량의 두 배에 가까운 화물을 실으면서도, 그것이 가져올 위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해운조합 운항관리자는 '대충' 점검했다. 과적과 부실 고박이라는 명백한 위험 신호를 보고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눈을 감았다. 선장과 선원들은 '대충' 책임을 다했다. 승객들에게 선내 대기를 지시한 채 자신들만 탈출했다. 해경은 '대충' 구조에 나섰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가장 중요한 임무를 소홀히 했다.

이 모든 '대충'이 모여 304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그중 대부분은 수학여행을 떠난 고등학생들이었다. 그들의 미래가, 꿈이, 웃음이 '대충'이라는 이름의 재앙 앞에 스러졌다.

미국 공군의 낙하산 품질관리 사례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불량률 1%도 용납할 수 없다는 공군의 입장은 처음에는 비현실적으로 보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당신이 직접 메고 뛰어내릴 낙하산"이라는 관점의 전환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었다. 자신의 생명이 걸린 일에는 누구도 '대충'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 곳곳에 '대충'의 문화가 얼마나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건설 현장에서 '대충' 지은 건물은 언젠가 무너진다. 식품 공장에서 '대충' 관리한 위생은 누군가의 건강을 위협한다. 병원에서 '대충' 확인한 차트는 환자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린다. 학교에서 '대충' 살핀 아이들의 변화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

'대충'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안전을 갉아먹는 암적 존재다. 1%의 실수가 100%의 실패를 불러온다는 사실을 세월호는 처절하게 증명했다.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는 변했을까? 안타깝게도 여전히 '대충'의 그림자는 곳곳에 드리워져 있다. 지난해 발생한 이태원 참사도 결국은 '대충' 관리한 안전의 결과였다. 예견된 위험에 '대충' 대응한 결과였다.

안전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시간을 아끼기 위해, 편의를 위해 '대충'해도 되는 영역은 없다. 특히 생명과 직결된 문제라면 더욱 그렇다.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우리 모두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일상에서 '대충'은 얼마나 자리 잡고 있는가? 그 '대충'이 누군가의 안전, 누군가의 생명과 연결되어 있지는 않은가?

미국 공군이 낙하산 제조업체에 요구했던 것처럼, 우리도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내가 직접 사용할 것처럼, 내 가족이 사용할 것처럼" 일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이 우리 사회 곳곳에 퍼진다면, 아마도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304명의 희생이 헛되지 않으려면, '대충'이라는 이름의 재앙을 우리 사회에서 몰아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이자, 살아남은 자의 책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