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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지방자치와 투명성 사이의 불편한 진실

양상현 기자 2025. 4. 14. 21:30

의정부시장의 미국행이 던지는 공직자 해외출장의 딜레마

지방자치단체장의 해외출장은 늘 논란의 중심에 선다. 필요한 일인지, 시기는 적절한지, 예산은 합당한지, 성과는 있는지... 질문은 끝없이 이어진다. 최근 김동근 의정부시장의 미국행을 둘러싼 논란은 이런 오래된 질문에 새로운 맥락을 더했다. 세부일정 공개를 주저하는 모습은 지방행정의 투명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3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떠난 6박8일의 미국 출장. 표면적 이유는 미네르바대학교의 한국캠퍼스 이전 협약이다. 교육도시로서의 위상을 높이려는 시도라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일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 탄핵 심판과 영남 산불 피해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과 맞물려 시장의 부재는 '정무적 판단 부족'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더 문제는 그 이후다. 논란이 커지자 시의원들과 언론이 세부일정 공개를 요구했지만, 의정부시는 '공문으로 요청하라', '정식 행정정보 공개요청을 하라'며 방어적 자세로 일관했다. 이런 태도는 의문을 증폭시킨다. 공개할 수 없는 무슨 내용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관료적 절차에 집착하는 것일까?

지방자치단체장의 해외출장은 공적 업무다. 시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만큼, 그 내용과 성과는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특히 의회의 요구에 즉각 응하지 않는 것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한 시의원의 말처럼 "시장의 세부일정에 공개하지 못할 무슨 비밀사항이 있는지"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의정부시가 김 시장의 지난해 일본, 중국, 싱가포르 출장 관련 내용을 귀국 후 몇 개월이 지나서야 일괄적으로 홈페이지에 올린 것도 눈길을 끈다. 이는 해외출장 정보 공개에 대한 소극적 태도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다. 출장 전 계획과 출장 중 활동, 출장 후 성과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것이 진정한 열린 행정의 모습일 것이다.

물론 모든 일정을 실시간으로 공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 외부 기관과의 협상이나 민감한 투자 유치 논의 등은 일정 기간 비공개가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비공개의 이유와 범위를 명확히 설명하고,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공개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장의 해외출장은 단순한 외유가 아니라 지역 발전을 위한 중요한 활동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가치는 투명성과 성과에 의해 입증되어야 한다. 출장 계획과 일정을 공개하고, 귀국 후에는 구체적인 성과와 후속 계획을 시민들과 공유할 때 비로소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의정부시장의 미국행 논란은 단지 한 지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지방자치와 투명성 사이의 균형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시민의 알 권리와 행정의 효율성, 정보 공개와 전략적 비밀 유지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답은 명확하다. 원칙적으로는 최대한의 투명성을 추구하되, 불가피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비공개를 허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판단 기준은 '시민의 이익'이어야 한다. 정보 공개가 시민에게 더 큰 이익이 된다면 공개해야 하고, 비공개가 궁극적으로 시민에게 더 큰 이익이 된다면 그 이유를 명확히 설명한 후 비공개할 수 있다.

의정부시장의 미국행 세부일정이 공개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소극적 태도가 시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는 점이다. 진정한 지방자치의 발전은 투명성과 책임성에서 시작된다. 의정부시가 이번 논란을 계기로 보다 열린 행정으로 나아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