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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법정 카메라가 비추지 못하는 민주주의의 그림자

양상현 기자 2025. 4. 15. 14:22

내란 재판의 비공개 결정이 던지는 법 앞의 불평등 문제



법정 안과 밖. 이 경계는 단순한 물리적 공간의 구분이 아니라, 정의와 공정이라는 가치가 실현되는 상징적 경계다. 그런데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혐의 재판이 시작되면서, 이 경계가 특권의 벽으로 변질되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

지귀연 부장판사의 결정은 단순한 재판 진행 방식의 문제가 아니다. 피고인석 촬영 불허와 출입 인원 제한이라는 사실상의 비공개 결정은 '법 앞의 평등'이라는 헌법적 가치에 대한 도전이다. 파면된 대통령, 이제는 한 명의 '자연인'에 불과한 피고인에게 왜 이런 특별한 대우가 필요한가? 이 질문은 우리 사법 시스템의 근간을 흔드는 중요한 물음이다.

역사를 돌아보자. 전두환 전 대통령의 내란 재판에서도 법정 촬영은 허용됐다. 그 시절보다 민주주의가 더 발전했다고 자부하는 지금, 오히려 더 폐쇄적인 재판 진행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내란죄는 단순한 형사 범죄가 아니라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 범죄다. 법조문에 명시된 형량이 '사형' 아니면 '무기'뿐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재판의 공개 원칙은 단순한 절차적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법 과정의 투명성을 보장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며, 궁극적으로는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구축하는 핵심 요소다. 특히 이번 사건처럼 국가의 최고 책임자가 헌정 질서를 파괴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는 경우, 그 재판 과정은 더욱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재판부의 재량'이라는 말로 이 결정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물론 법정 질서 유지와 피고인의 인권 보호라는 측면에서 재판부의 재량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재량권 행사가 '법 앞의 평등' 원칙을 훼손하고, 특정 피고인에게 특혜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면, 이는 재량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다.

헌법 제11조는 명확하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사회적 특수계급은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떤 형태로든 이를 창설할 수 없다." 이 조항은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근본 가치를 담고 있는 규범이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일반 시민과 다른 대우를 받는다면, 이는 사실상 '사회적 특수계급'을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결정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많은 시민들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로 사법 시스템의 불공정성을 비판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전직 대통령에게 특별한 대우를 제공하는 모습은 그런 불신을 더욱 강화할 뿐이다.

내란 혐의로 재판받는 피고인이 법정에 들어서며 '다 이기고 돌아왔다'는 듯한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에 대한 모욕이다. 이런 모습을 국민들이 직접 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자기 방어 메커니즘이자, 역사적 교훈을 남기는 방법이다.

민주주의는 단순한 제도가 아니라 끊임없이 지켜나가야 할 가치다. 그리고 그 가치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는 투명성이다. 권력을 가진 자들의 행위가 공개되고,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과정이 투명하게 이루어질 때, 민주주의는 더욱 강해진다.

내란 혐의 재판의 공개는 단순한 호기심 충족이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사법적 복원 과정을 국민이 직접 지켜보고,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중요한 기회다. 법정 카메라가 비추지 못하는 곳에 민주주의의 그림자가 드리워질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재판부는 이 결정을 재고해야 한다. 피고인석 촬영을 허용하고, 가능한 한 많은 국민이 재판 과정을 지켜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법 앞의 평등'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는 길이며,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방법이다.

민주주의는 빛 속에서 자란다. 어둠 속에서는 특권과 불평등만이 자랄 뿐이다. 법정에 카메라를 들이자.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