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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당해산, 민주주의의 자기방어인가 정치보복인가

양상현 기자 2025. 4. 17. 15:46

헌법적 판단의 경계에서 바라본 국민의힘 해산 논의



정치권에 '위헌정당 해산' 논의가 불거지면서 우리 사회는 또 하나의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대통령 탄핵 이후 일부에서는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 청구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헌법적 판단이 요구되는 심각한 문제다.

헌법 8조 4항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조항은 민주주의가 스스로를 파괴하는 세력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로 설계됐다.

그러나 정당해산이라는 극단적 조치는 민주주의 역사에서 매우 드물게, 그리고 신중하게 적용되어 왔다.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 사례는 우리 헌정사에서 유일한 정당해산 판결이다. 당시에도 '민주적 기본질서 위배'라는 판단 기준을 두고 치열한 법리적, 정치적 논쟁이 있었다.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 논의는 이전과는 다른 맥락에서 진행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이 있었고, 일부 의원들의 내란 동조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정당 전체의 해산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정당해산 제도의 본질은 민주주의의 자기방어 메커니즘이다. 그러나 이 제도가 정치적 보복의 도구로 변질된다면, 그것은 오히려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정당해산은 정당의 목적과 활동이 '체계적으로'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 적용되어야 하며, 일부 구성원의 행위만으로 정당 전체를 해산하는 것은 비례의 원칙에 어긋날 수 있다.

또한 정당해산은 정치적 다양성과 국민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특정 정당을 지지했던 유권자들의 정치적 의사표현 기회가 박탈되는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국민주권 원리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현실적으로도 정당해산은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정부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법무부 장관이 청구하고, 헌법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고려와 법리적 판단이 복잡하게 얽히게 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정당해산이 정치적 갈등을 해소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사회적 분열을 심화시키고, 정치적 대립을 격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정당이 해산되더라도 그 지지기반은 사라지지 않으며, 다른 형태로 재결집할 가능성이 높다.

내란 동조 의혹이 있는 개별 정치인들에 대한 책임 추궁은 정당해산과는 별개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형사법적 책임은 개인에게 귀속되는 것이며, 이를 정당 전체의 문제로 확대하는 것은 집단적 책임을 묻는 위험한 발상이 될 수 있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정치적 견해가 공존하고 경쟁하는 과정에서 발전한다. 이 과정에서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격한 법적 제재가 필요하지만, 그것이 정치적 다양성 자체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의 자기방어와 정치적 다양성 보장 사이의 미묘한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이 균형점을 찾는 과정에서 감정적 대응이나 정치적 계산보다는 헌법적 원칙과 민주주의의 근본 가치에 충실한 접근이 필요하다.

정당해산이라는 극단적 조치를 논의하기에 앞서, 우리는 민주주의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더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의 자기방어이자,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성숙해지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