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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한민국 속 '육지의 섬', 동두천의 눈물

양상현 기자 2025. 4. 17. 16:04

74년간의 안보 희생, 이제는 정당한 보상이 필요하다


경기 동두천시 걸산마을을 아는가? 대한민국 영토임에도 미군 기지 안에 갇혀 '육지의 섬'으로 불리는 이곳은 우리 사회가 외면해온 아픔의 현장이다. 1951년 미군 주둔 이후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곳 주민들은 자신의 고향에 출입하기 위해 '허가증'을 받아야 하는 기이한 현실을 살아왔다.

지난 주말, 걸산마을을 찾았다. 마을 입구에서 미군 헌병의 검문을 받으며 느낀 위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 국민이 대한민국 땅에 들어가기 위해 외국 군인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니. 이것이 21세기 대한민국의 모습이라고? 마을 주민 김씨(72)는 "우리는 평생 허락받는 삶을 살아왔다"며 "손주들이 놀러 오려 해도 출입증이 없어 못 온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2022년 6월부터 미군 측이 신규 전입자에 대한 출입 패스 발급을 전면 중단했다는 점이다. 주민등록상으로는 이곳 주민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집에 들어갈 수조차 없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행정 문제가 아닌,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의 심각한 침해다.

동두천의 아픔은 걸산마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시 전체 면적의 42%에 달하는 40.63㎢가 미군에 제공됐다. 서울 여의도 면적(2.9㎢)의 14배에 달하는 규모다. 한때는 주한미군과 그 가족, 관련 종사자 등 약 2만 명이 거주하며 지역 경제가 활기를 띠었지만, 평택으로의 대규모 이전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보산동과 광암동 일대를 걸으며 본 풍경은 충격적이었다. 한때 '위대한 갯츠비'로 불리며 활기찼던 클럽 거리는 이제 폐업한 가게들로 가득하다. 지역 상인회에 따르면 미군 관련 자영업체의 70% 이상이 문을 닫았다고 한다. 한 상인은 "미군이 떠나고 나서 손님이 뚝 끊겼다"며 "정부는 평택에만 돈을 쏟아붓고 우리는 버려졌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수치로 보면 더욱 심각하다. 공여지 반환 지연으로 인한 연간 300억 원의 지방세 손실, 도시 개발 차질에 따른 매년 5,278억 원 규모의 경제 손실... 누적 피해액은 25조 원을 넘어섰다. 이 때문일까? 2024년 상반기 동두천의 실업률은 전국 1위, 재정 자립도는 경기도 31개 시·군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시의 지속적인 요청으로 23.21㎢의 공여지를 돌려받았지만, 그중 99%가 개발이 불가능한 산지라는 점이다. 반면 평지로 활용 가치가 높은 캠프 케이시와 캠프 호비 등 17.42㎢는 반환 계획조차 없다. 이것이 과연 공정한 처사인가?

평택의 사례와 비교하면 더욱 분명해진다. 미군 기지 이전을 이유로 제정된 '미군 이전 평택 지원법'을 통해 평택은 삼성 반도체 유치, 기반 시설 조성 등 약 19조 원의 지원을 받아 인구 60만의 도시로 성장했다. 반면 동두천은 어떤가? 미군이 떠나고 남은 것은 폐허뿐이다.

2014년, 정부는 미군의 동두천 한시 잔류에 대한 보상으로 약 30만 평 규모의 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조성 이후 분양과 기업 유치는 온전히 지자체의 몫으로 떠넘겨졌고, 경기 침체와 분양가 상승, 업종 제한 등으로 1단계 선분양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것이 과연 '국가'산업단지라 할 수 있을까?

동두천시의 요구는 명확하다. 74년간 지속된 안보 희생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으로 '동두천 지원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 다행히 지난해 5월, 김성원 국회의원이 「주한미군 장기 미반환 공여구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에는 동두천이 입은 피해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는 구체적인 지원 방안이 담겨 있다.

또한 국제스케이트장 유치도 절실하다. 동두천은 '빙상의 도시'로서의 위상, 뛰어난 교통 접근성, 소요산 확대 개발 사업과의 연계 가능성 등에서 타 지자체와 비교해 뚜렷한 경쟁 우위를 지니고 있다. 이는 단순한 스포츠 시설 유치를 넘어, 침체된 지역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기회다.

동두천의 현실은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보여준다. 국가 안보를 위해 일방적 희생을 강요받았지만, 그에 상응하는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제는 정부가 동두천의 절박한 요구에 응답하고, 정당한 보상을 시작할 때다.

걸산마을 주민들이 자유롭게 고향을 오갈 수 있는 날, 동두천 시민들이 더 이상 '안보 희생'이라는 무거운 짐을 홀로 지지 않아도 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란다. 그것이 진정한 국가의 책임이자,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