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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여행의 지도를 그리다

양상현 기자 2025. 4. 19. 03:02

『대한민국 구석구석 무장애 여행』이 열어가는 포용적 여행의 새 지평



여행 안내서는 흔하다. 하지만 진정으로 '모두를 위한' 여행 안내서는 드물다. 전윤선의 『대한민국 구석구석 무장애 여행』은 이 희소한 영역에 당당히 발을 들이며, 여행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 이 책은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 우리 사회의 포용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무장애(barrier-free)'라는 개념은 물리적 장애물뿐 아니라 사회적, 심리적 장벽까지 포함한다. 저자는 이 개념을 여행이라는 보편적 욕구와 결합시켜, 장애인, 노약자, 임산부, 영유아 동반 가족 등 모든 이들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이는 단순한 친절이 아닌, 여행할 권리의 평등한 분배라는 사회정의의 문제로 확장된다.

책의 구성은 실용적이면서도 문학적이다. 전국 각지의 무장애 여행지를 소개하는 정보적 측면과 함께, 저자의 직접 경험과 만남에서 우러나오는 서사적 풍요로움이 어우러진다. 특히 휠체어를 타고 여행하는 한 가족과의 동행기, 시각장애인 여행자의 감각적 체험 등은 독자에게 새로운 관점을 선사한다.

"바다를 보지 못해도, 파도 소리와 짠 내음으로 바다를 느낄 수 있어요. 오히려 더 집중해서 느끼게 되죠." 책 속 시각장애인 여행자의 이 말은, 여행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여행은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임을, 저자는 이런 증언들을 통해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무장애 여행지 소개는 꼼꼼하고 실용적이다. 경사로의 각도, 화장실 위치, 점자 안내판 유무 등 세세한 정보까지 담아, 실제 여행 계획에 즉시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진가는 단순한 정보 나열을 넘어선다. 저자는 각 여행지에 얽힌 역사와 문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담아내며, 무장애 여행의 인문학적 깊이를 더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저자의 시선이다. 장애를 가진 여행자를 '도움이 필요한 대상'으로 타자화하지 않고, 동등한 여행의 주체로 바라본다. 이는 '무장애'가 단순한 시혜가 아닌, 모두의 권리임을 강조하는 중요한 관점이다.

책의 중반부에서 저자는 무장애 여행의 현실적 한계와 도전도 솔직하게 다룬다. 아직 갈 길이 먼 한국의 무장애 인프라, 여전히 존재하는 사회적 편견, 비용 문제 등을 직시하며,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한 제안들을 내놓는다. 이 부분은 책에 현실감과 진정성을 더한다.

문체는 따뜻하면서도 명료하다. 감상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공감을 이끌어내는 균형 잡힌 글쓰기가 돋보인다. "모든 길이 누군가에게는 막힌 길일 수 있다. 그 막힌 길을 뚫는 것은 결국 우리 모두의 몫이다."와 같은 구절은 간결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준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다. 해외 무장애 여행 사례나 비교 연구가 부족하여, 글로벌 맥락에서의 한국 상황을 파악하기 어렵다. 또한 디지털 접근성(앱, 웹사이트 등)에 대한 논의가 상대적으로 적은 점도 현대 여행 환경을 고려할 때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구석구석 무장애 여행』은 여행 문학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의미 있는 작품이다. 이 책은 단순한 여행 가이드를 넘어,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포용성과 다양성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여행이라는 보편적 욕구를 통해 사회적 장벽을 가시화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은 독자에게 깊은 사유의 기회를 제공한다.

"진정한 여행은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저자의 이 신념은 책 전체를 관통하며, 독자에게 여행과 사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선사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여행을 바라볼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좋은 책이 가진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