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잊지 않겠습니다"...포천 시민들, 세월호 11주기 추모 물결

양상현 기자 2025. 4. 19. 04:13

노란 리본 물결 속에 울려 퍼진 기억과 약속의 목소리들



경기 포천시 자원봉사센터 앞 마당이 노란빛으로 물들었다. 16일 오후, 세월호 참사 11주기를 맞아 포천 시민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바람에 나부끼는 노란 리본들 사이로 "진실·책임이 이끄는 변화, 기억·약속이 만드는 내일"이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정오부터 설치된 추모 공간에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시민들이 노란 리본 키링과 배지를 받아 가슴에 달았다. 추모 리본에 글을 쓰는 시민들의 표정은 무거웠지만, 그 안에는 단단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처음에는 몇 명이나 올까 걱정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죠." 행사를 준비한 포천시민사회연대 박재규 담당자의 말이다. "1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많은 시민들이 세월호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오후 6시, 본격적인 추모문화제가 시작됐다. 오상운 신부의 추모사를 시작으로 학생, 교사, 장애인 활동가 등 다양한 시민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송우고등학교 오채은 학생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세월호 참사 당시 초등학생이었습니다. 이제 희생된 학생들과 같은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는 "SNS에 추모 게시물을 공유하고, 친구들과 함께 노란 리본을 달며 우리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기억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포천일고 김민림 교사는 "교사로서 아이들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이 여전히 크다"며 "세월호 참사가 남긴 교훈을 잊지 않고 안전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추모 공연도 이어졌다. 특히 이주민과 선주민이 함께하는 BTS합창단의 존 레논의 'Imagine' 공연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합창단 지휘자 정미영씨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한 목소리를 내는 것처럼,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향한 염원도 국적과 인종을 초월해 하나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곡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축석초등학교 강지훈 교사의 기타 연주와 노래는 광장을 더욱 숙연하게 만들었다. 그가 부른 '봄날'이라는 노래의 "언젠가 만나리라"라는 가사가 울려 퍼질 때, 일부 참석자들은 눈물을 훔쳤다.

포천나눔의집장애인자립생활센터 신진희 활동가는 "재난 상황에서 장애인은 더 큰 위험에 노출된다"며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문화제의 마지막 순서는 반월교로 이동해 시민들이 쓴 추모 리본을 묶는 것이었다. 해가 저물어 어둑해진 다리 위에서, 참가자들은 하나둘 노란 리본을 묶었다. "잊지 않겠습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함께 걷겠습니다"와 같은 메시지들이 바람에 나부꼈다.

포천시민사회연대 오상운 상임대표는 "1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많다"며 "오늘 모인 시민들의 마음처럼,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묻는 과제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행사에 참석한 60대 시민 김영철씨는 "세월이 흐르면서 세월호 참사가 점점 잊혀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해가 완전히 저물고, 반월교에 걸린 수백 개의 노란 리본이 가로등 불빛에 반짝였다. 11년 전 그날의 아픔을 기억하고, 진실과 책임을 다짐하는 포천 시민들의 마음이 노란 리본에 담겨 밤바람에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