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없었던 국무회의가 공식 기록에 남아있는 기이한 현실
헌재가 부정한 12월 3일 밤 '52회 국무회의', 역사 왜곡의 현장
정부 공식 기록에 2024년 12월 3일 밤 열렸다는 국무회의가 여전히 남아있다고 한다. 헌법재판소가 "적법한 국무회의가 없었다"고 판단했음에도 불구하고, 행정안전부 홈페이지에는 51회에서 53회로 건너뛰는 국무회의 회차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 이는 단순한 행정적 오류가 아닌 역사 왜곡의 문제다.
지난 4월 4일 헌법재판소는 윤석열에 대한 파면 결정문에서 명확히 밝혔다. "일부 국무위원들에게 대통령실로 들어오라고 연락한 것만으로 적법한 국무회의 소집 통지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참석자들 사이에 이 사건 계엄 선포에 관한 '심의'가 이루어졌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윤석열이 국무회의 심의 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해 헌법과 계엄법을 위반했다고 결론 내렸다.
그런데 행정안전부 홈페이지의 국무회의록 목록을 보면 기이한 현상이 발견된다. 2024년 12월 3일 오전 10시에 열린 51회 국무회의 다음에 53회 국무회의(12월 4일 오전 4시 27분)가 바로 이어진다. 회의록은 없지만 회차 번호만으로 52회 국무회의가 존재했다는 암시를 주고 있다. 이는 헌법재판소의 판단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 문제의 심각성은 단순히 번호 매김의 오류를 넘어선다. 국가 공식 기록에 실제로 열리지 않았던, 더 정확히는 헌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회의가 마치 있었던 것처럼 남아있다는 점이다. 이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행위다.
역사는 기록으로 남는다. 미래 세대가 2024년 12월 3일의 사건을 연구할 때, 정부 공식 기록에 52회 국무회의가 있었다는 흔적은 혼란을 줄 수 있다. "국무회의가 열렸는데 왜 헌재는 없었다고 판단했을까?"라는 의문을 품게 만들 수 있다. 이는 내란 시도의 불법성을 희석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이러한 기록 왜곡이 단순한 실수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내란 주도자에 의해 임명된 총리와 장관들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의도적인 역사 지우기의 일환으로 보인다. 한덕수 총리는 내란 우두머리의 절친인 이완규 법제처장을 헌법재판관에 임명하려 했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대선 출마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은 내란 극복의 길이 아직 멀었음을 보여준다.
국무회의 회차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 의사결정의 연속성과 합법성을 상징한다. 51회에서 53회로 건너뛰는 현재의 기록은 마치 12월 3일 밤에 적법한 52회 국무회의가 있었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는 즉각 바로잡아야 할 문제다.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따라 52회 국무회의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정리되어야 한다. 53회로 표기된 회의는 52회로 수정되어야 하며, 이후의 모든 회의 번호도 순차적으로 조정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한 행정적 조치가 아니라 역사적 진실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다가오는 대선에서 미래와 희망, 제도 개혁을 논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란의 실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추궁은 그 어떤 의제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그 첫걸음은 공식 기록부터 바로잡는 것이다.
역사는 승자가 쓴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역사는 진실에 기반해 기록되어야 한다. 없었던 국무회의를 있었던 것처럼 남겨두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우리는 미래 세대에게 왜곡되지 않은 역사를 물려줄 의무가 있다. 그 시작은 52회 국무회의라는 유령 같은 기록을 지우는 것에서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