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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발 밑의 공포, 시민의 알 권리는 어디에

양상현 기자 2025. 4. 20. 22:47

반복되는 싱크홀 사고와 비공개되는 안전정보의 역설



지난 3월 강동구 명일동에서 발생한 싱크홀 사고로 배달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이 비극적 사건 이후에도 전국 곳곳에서 땅 꺼짐 현상이 계속되고 있지만, 시민들은 자신이 서 있는 땅이 안전한지 알 길이 없다. 왜냐하면 서울시가 보유한 지반침하 위험정보를 모두 비공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일동 싱크홀은 우연한 사고가 아니었다. 서울시는 이미 2023년 도시철도 9호선 연장사업 관련 지하 안전 영향평가를 통해 해당 지역이 지반침하 취약구간임을 파악하고 있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공사 노동자가 두 차례나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고 민원을 제기했음에도 서울시가 형식적인 대응에 그쳤다는 점이다. 월 1회 안전점검 약속도 행정 절차를 핑계로 이행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는 지난해 구축한 '지반침하 안전지도'를 비롯해 관련 보고서들을 모두 비공개 처리했다. 정보공개센터가 청구한 안전지도, 영향평가 용역 보고서, 지하안전조사 월간보고서 모두 거부당했다. 서울시는 "위험 지역을 공개하면 시민들의 불안감만 자극하고 부동산 가격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황당한 이유를 들었다.

서울시의 주장대로 안전지도가 단순히 '정비 우선순위'를 나타내는 것이라 해도, 이는 오히려 공개되어야 할 이유가 된다. 시민들은 자신이 살고 일하는 지역의 안전 상태와 관리 우선순위가 어떻게 결정되는지 알 권리가 있다. 또한 서울시가 비공개 근거로 든 국가공간정보기본법은 국가기간시설물 정보 보호를 위한 것이지, 시민 안전과 직결된 지반침하 위험정보까지 감출 근거가 될 수 없다.

해외 사례를 보면 안전정보 공개는 오히려 상식이다. 미국 플로리다주는 지질학적 위험 단계와 과거 사고 이력이 담긴 침하사고 지도를 누구나 볼 수 있게 공개한다. 일본 도쿄도 건설공사국은 하수도관 매설 상황과 지반침하 사고조사보고서를 체계적으로 홈페이지에 올려놓는다. 이들 국가에서 안전정보 공개는 시민의 불안을 키우는 게 아니라 오히려 줄이는 방법으로 인식된다.

2021년 구리 지반침하사고 조사 결과에서도 중앙지하사고조사위원회는 지반조사 정보와 계측 정보를 관계자들이 적극적으로 공유할 것을 권고했다. 안전 문제에서 정보 공유는 이미 필수적인 해결책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서울시는 여전히 "조사업무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추상적 우려를 내세워 정보를 감추고 있다.

지반침하가 공포스러운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지하의 위험징후를 전혀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아스팔트 표면은 무너지기 직전까지도 멀쩡해 보인다. 그래서 더욱 투명한 정보 공개가 필요하다. 시민들이 위험을 인지하고 대비할 수 있어야 하며, 다양한 전문가들이 안전관리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재난은 그냥 발생하지 않는다. 아무리 불의의 사고라도 공동체가 위험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그에 따른 대응체계를 얼마나 잘 갖추고 있는지에 따라 피해 규모는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서울시가 안전정보를 감추는 동안, 시민들은 발 밑의 공포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

지하 안전을 제대로 평가하고 관리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만이 시민들의 불안을 덜고 안전을 보장하는 길이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이 부동산 가격이나 행정 편의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당연한 원칙이 지켜지길 바란다. 발 밑이 꺼지는 공포 속에서 시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감춰진 정보가 아니라 투명하게 공개된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