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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미역 없는 미역국 뒤에 숨은 진실

양상현 기자 2025. 4. 20. 22:49

학교급식노동자들의 '인간답게 일하고 싶다'는 외침을 외면하는 사회



지난 몇 주간 대전 일부 학교에서 벌어진 '급식 중단' 사태는 우리 사회가 학교급식노동자들의 현실을 얼마나 외면해왔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언론은 '미역 없는 미역국'과 '달걀 지단 없는 오므라이스'를 앞세워 마치 노동자들이 기본적인 업무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도했다. 하지만 이 사태의 본질은 무엇일까?

학교급식노동자들이 요구한 것은 단순히 일을 덜하겠다는 게 아니다. 그들은 족저근막염, 방아쇠수지증후군, 손목터널증후군 같은 각종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며 일하고 있다.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어 방광염과 변비에 시달리는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노동강도를 줄여달라는 절박한 요청이었다.

K중학교의 경우, 900여 명의 급식을 단 8명이 책임진다. D여고는 1,000여 명의 급식을 10명이 담당한다. 이는 다른 공공기관 급식실보다 2~3배 많은 업무량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급식노동자들이 요구한 것은 무엇인가? 자른 미역을 사용하게 해달라, 액상란을 쓰게 해달라, 교직원 별도 배식대를 없애달라는 정도였다.

배지현 분회장의 증언은 충격적이다. "판란은 보통 34판, 많게는 37판이 입고되는데, 조리원 1~2명이 1시간 동안 계란만 깨야 한다." "미역 5kg을 물에 불리면 10배가 되어 50kg이 되는데 혼자서 긴 미역을 자르는 것이 너무 힘들다." 이런 현실적인 어려움을 호소했지만, 학교 측은 이를 무시했다.

학교급식노동자들은 전면 파업이 아닌 준법투쟁을 선택했다. 학생들의 급식 중단은 원치 않았다. 그러나 일부 학교에서는 이들의 준법투쟁을 사실상 방해하는 조치를 취했고, 결국 급식 중단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책임은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돌아갔다.

한 학생이 쓴 대자보의 내용이 가슴에 와닿는다. "부끄러운 건 파업이 아니라 우리의 반응이다. 이번 쟁의는 단지 급식을 중단하거나 위생을 신경 쓰지 않겠다는 게 아니다. '힘들어서 그만두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조금 더 인간답게 일하고 싶다'는 절박한 요청이다."

K중학교 사태는 더욱 심각했다. 학교 측이 식재료 조정 요구를 거부하자 결국 7명의 학교급식노동자가 '더는 버틸 수 없다'며 단체 병가를 냈다. 나머지 1명은 이미 산재로 휴직 중이었다. 이들은 병가 전에도 학부모, 교장과 면담하며 "지금이라도 요구사항을 들어준다면 진통제를 먹으면서라도 복귀하겠다"고 했지만, 학교 측은 끝내 거부했다.

이 사태의 근본 원인은 고질적인 인력난과 열악한 노동환경이다. 저임금에 과중한 업무로 신규 채용은 미달되고, 채용된 인력도 1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떠난다. 지금까지 학교급식은 노동자들의 헌신에 기대왔지만, 이제는 한계에 다다랐다.

학교급식노동자들의 요구는 과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조금 덜 아프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원한다. 자른 미역, 액상란 같은 전처리된 식재료 사용은 급식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도 아니다. 많은 학교에서 이미 사용하고 있는 방식이다.

김양희 대전지부장의 말처럼 "급식에 예산이 투입되고, 식자재도 좋아지지만 정작 급식실에서 일하는 사람에 대한 처우는 좋아지지 않는다." 학생들의 건강한 급식을 위해 자신의 건강을 희생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가 됐다.

'미역 없는 미역국'은 학교급식노동자들의 파업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절박한 호소를 외면한 교육당국과 학교 측의 책임이다. 학생들의 건강한 급식을 위해서라도 급식실 인력 확충과 노동환경 개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학교급식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일할 수 있을 때, 우리 아이들도 건강한 급식을 먹을 수 있다. 그들의 외침에 귀 기울이는 것은 결국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