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증세 없는 복지, 이재명의 달콤한 약속
경제 위기 속 '재정 확대' 논쟁, 현실적 해법은 어디에 있나
민주당 대선 경선이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후보들 간 정책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특히 재정 확보 방안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이재명 후보는 "증세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재정 지출 조정과 성장률 회복을 통한 재원 마련을 강조했다. 반면 김경수, 김동연 후보는 보다 현실적인 재정 확대 방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재명 후보의 '증세 없는 복지' 공약은 유권자들에게 달콤하게 들린다. 누구도 세금을 더 내고 싶어하지 않는다. 특히 코로나19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정부의 부담을 민간에 떠넘기는 증세"라는 표현은 대중의 정서를 정확히 짚어낸다. 하지만 이 달콤한 약속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는 따져봐야 한다.
이재명 후보가 말하는 "재정 지출 조정"과 "조세 지출 조정"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 재정 지출 조정은 기존 예산을 줄이거나 재배치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한국의 재정 구조상 법정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단기간에 대규모 조정은 쉽지 않다. 조세 지출 조정은 각종 세금 감면 혜택을 줄이는 것인데, 이 역시 특정 계층이나 산업에 실질적인 증세 효과를 가져온다.
"성장률을 회복해서 재정에 대한 근본적 대책을 만드는 것"이라는 주장도 의문이 든다. 경제성장이 세수 증가로 이어지는 것은 맞지만,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구조적 문제와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 속에서 단기간에 성장률을 획기적으로 높이기는 어렵다. 더구나 성장의 과실이 세수 증가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김경수 후보의 지적처럼 "조세 조정, 재정 조정만으로는 지금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재명 후보가 제시한 여러 복지 공약들을 실현하려면 상당한 재원이 필요하다. 기본소득, 주택 공급 확대, 의료 보장성 강화 등 모든 공약을 이행하려면 수십조, 수백조의 재원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물론 증세는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선택이다. 어떤 정치인도 "세금을 더 걷겠다"고 선뜻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김동연 후보의 말처럼 "책임있는 정치인이라면 증세까지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에게 달콤한 약속만 하고 그 재원 마련 방안은 모호하게 넘어가는 것은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다.
김경수 후보가 언급한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중요한 지점이다. 증세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내가 내는 세금이 한 푼도 허투루 쓰이지 않을 것 같다"는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세금을 더 걷는 문제가 아니라,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세계적으로 복지국가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나라들은 대부분 높은 조세부담률을 가지고 있다. 북유럽 국가들은 GDP 대비 40%가 넘는 조세부담률을 유지하며 포괄적인 복지제도를 운영한다. 반면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OECD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 복지 확대를 원한다면 그에 맞는 재원 마련 방안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이재명 후보의 '증세 없는 복지' 공약은 당장은 유권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보다 현실적인 재정 확보 방안이 필요하다. 재정 지출 효율화와 경제성장을 통한 세수 확대는 기본이지만, 필요하다면 증세도 검토해야 한다는 솔직한 메시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대선 후보들은 달콤한 약속보다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국민들은 생각보다 현명하다. 당장의 부담을 줄여주는 정책보다, 미래를 위한 지속 가능한 해법을 원한다.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하다는 달콤한 약속보다, 우리 사회가 함께 부담하고 함께 누리는 연대의 가치를 제시하는 후보가 진정한 리더십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