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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이들을 위한 등불, 마음을 비추다

양상현 기자 2025. 4. 21. 19:01

작은 불빛에 담긴 그리움과 사죄의 마음



불교 사찰의 법당에서는 망자를 위한 등불 하나가 누군가에겐 간절한 위로가 된다. 등불을 밝히기 위해 찾는 사람들의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그 속에는 떠난 이를 향한 절절한 그리움과 잘하지 못한 지난날에 대한 후회가 담겨 있다. 경기도 포천 관인면 삼율리에 위치한 도연 스님의 법당 역시 매일 이를 위해 찾아오는 방문객들로 분주하다.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 성당 재단에서 온 어머니의 눈물

어느 날, 법당에는 나이가 든 여성이 조심스럽게 들어섰다. 그녀는 스님 앞에서 긴장된 모습으로 말했다.  

“저는 성당을 다니는 신도인데, 등을 하나 달고 싶어요.”  

작년에 세상을 떠난 큰아들을 위해서였다. 등표에 새길 문구를 스님이 적어가던 중, 그녀의 요청대로 “000 아들아 하늘나라에서나마 행복하렴.”을 남겼다. 문구를 적어나가는 동안 그녀는 담담해 보였다. 하지만 마지막에 스님이 “엄마가.”라고 적자 말없이 입을 가리고 앉아 울음을 터트렸다. 더는 말을 잇지 못한 이 여성은 평생 엄마로 살아온 이들에게 익숙한 풍경이었다.

◇ 불효의 마음을 담은 아들의 발걸음

또 다른 날에는 한 남성이 법당을 찾았다. 그는 고개를 떨군 채 단호하지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등 하나 달아주십시오.”  

그는 생전에 어머니께 불효했다는 죄책감이 큰 듯 보였다.  

“너무 불효하고 죄를 많이 지었는데, 등을 하나라도 달아드려야 마음이 조금은 편해질 것 같아요.”  

좋은 아들이 되지 못했다는 후회와 부족했던 사랑을 대신할 작은 등불 하나가 그의 마음을 비쳤다.

◇ 의붓아버지에게 닿지 못한 호칭

돌아가신 의붓아버지를 위한 등불을 밝히기 위해 온 또 다른 방문객도 있었다. 그는 스님에게 말을 건넸다.  

“생전에 아버지라고 한 번도 불러드리지 못했네요. 너무 죄송합니다.”  

어색했던 관계와 오래도록 가슴에 맺혀있던 감정들이 작은 불빛에 담겼다. 떠나버린 후에야 후회 스러웠던 마음을 등불로 대신해 그에게 전하려는 노력이었다.  

◇ 그리움과 사죄, 그리고 위로

스님은 매일 법당을 찾는 이들의 이야기를 읽어내며 흘러가는 시간을 보낸다. 스님은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은 정말 다양하지만, 돌아보면 결국 그 뿌리는 사랑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며 "등 하나를 켜는 작은 행동에 깊은 감정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법당 뒷마당에 피어 있는 명자꽃은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변하기라도 하는 듯 바위 위에 늘어섰다. 마치 망자를 위한 헌화를 대신하는 듯, 고요히 흔들리며 자연의 위로를 전했다.  

◇ 작은 불빛이 지닌 위로의 힘

망자를 위한 등불은 단지 사후의 평안을 기원하는 의식이 아니다. 그 등불에 담긴 사랑과 후회, 그리고 용서는 살아있는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떠난 이들과의 연결을 이어주는 상징적 행위다. 

법당의 작은 불빛들은 우리가 모두 누군가를 사랑했고, 사랑받았던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것이 우리를 가슴 먹먹하게 하고, 동시에 살아갈 힘을 주는 이유일 것이다.  

작은 불빛 하나를 밝히는 일조차 그리울 수밖에 없는 모든 이들을 위해, 법당의 등불은 오늘도 환하게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