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자산 재활용의 글로벌 표준, R2v3 인증 국내 도입 본격화
데이터 보안·환경 보호·근로자 안전 포괄하는 종합 인증... "한국 재활용 산업의 새 기준 될 것"
전자기기 폐기물이 급증하는 디지털 시대, 이를 안전하게 처리하고 재활용하는 국제 표준이 국내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R2v3'로 불리는 이 인증은 IT 자산의 데이터 삭제부터 재사용, 재활용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관리 체계를 제시한다.
R2는 'Responsible Recycling(책임 있는 재활용)'의 약자로, 북미 중심의 비영리 협회 SERI(Sustainable Electronics Recycling International)가 제정한 표준이다. 2008년 첫 지침이 마련된 이후 2013년 개정을 거쳐, 2020년 R2v3로 대폭 강화됐다.
"한국에는 전기전자 재활용 인허가 제도가 있지만, IT 자산의 데이터 삭제, 재사용, 재활용 전 과정을 포괄하는 종합적인 인증 제도는 없습니다." IT자산처리(ITAD) 전문기업 리맨의 구자덕 대표는 "현행 폐기물 관리 체계는 대부분 물리적 폐기물 처리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어, 디지털 기기의 정보보안·재사용 가치·환경·근로자 안전 책임을 한꺼번에 고려한 인증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리맨은 지난해 11월 R2v3 인증을 취득했다. 국내에서 이 인증을 보유한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구 대표는 "ISO 9001, 14001, 45001, 27001 등 국제표준을 이미 보유하고 있었지만, 전자기기에 특화된 R2 표준에 대한 준비를 계속해왔다"며 "까다로운 현장 심사를 포함한 종합적 관리체계에 대한 검증을 마친 후 공식 인증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R2v3는 기존 R2:2013에서 크게 개선된 버전이다. 전자폐기물 산업의 기술적 진화, 데이터 보안 규제 강화, 기업의 ESG 경영 요구 증가, 국가별 전자폐기물 수출입 규제 등 변화된 환경을 반영했다.
특히 R2v3는 핵심 요구사항 10개와 프로세스별 요구사항 7개로 구분되어 있다. 핵심 요구사항은 모든 R2 시설에 적용해야 하지만, 프로세스 요구사항은 기업의 특성에 따라 선택적으로 인증받을 수 있다.
전자기기 재활용 전문가는 "R2v3의 가장 큰 특징은 유해폐기물 관리, 설비 기준, 데이터 삭제, 다운스트림 관리, 테스트 및 수리 등 5개 영역에서 기준이 크게 강화된 점"이라고 설명했다.
유해폐기물 관리 측면에서는 인쇄회로기판, 배터리, 브라운관, 수은 함유 부품 등 '중점관리물질(Focus Materials, FMs)'에 대한 식별, 문서화, 추적 관리가 더욱 엄격해졌다. 설비 기준도 강화되어 전자기기 및 부품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처리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건이 요구된다.
데이터 삭제는 R2 인증의 핵심 요건으로, 별도의 부록(Appendix B)을 통해 강화된 보안 기준과 절차가 제시된다. 모든 데이터 저장장치에 대해 장치 유형과 데이터 민감도에 따른 적절한 삭제 방식 적용, 삭제 검증, 품질관리, 추적 및 문서화, 보안 통제 등 통합된 관리 체계가 요구된다.
"데이터 삭제는 물리적 삭제(파쇄) 또는 소프트웨어 삭제 방식으로 진행하며, NSA(미국 국가안보국) 기준을 따르거나 독립된 전문가에 의해 효과성이 입증된 방식을 사용해야 합니다." 리맨의 데이터보안팀 관계자는 "특히 삭제 작업 공간에 대한 출입통제, CCTV 설치, 최소 60일간의 영상 보관 등 물리적 보안 요건도 강화됐다"고 덧붙였다.
다운스트림 관리는 전자폐기물이 수거된 이후 최종 폐기까지의 전 과정을 추적하고, 이 과정에서 모든 공급업체가 R2 기준을 준수하는지 관리하는 것이다. 테스트 및 수리 영역에서는 장비의 기능성과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재사용 계획'을 수립하고, 모든 테스트 및 수리 작업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국내 IT 자산 관리 담당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폐기 장비의 데이터 보안과 환경적 처리에 대한 책임이 점점 커지고 있다"며 "R2v3 인증을 받은 업체를 통해 처리하면 데이터 유출 위험을 줄이고 ESG 경영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R2v3 인증은 국내 재활용 산업의 새로운 기준이 될 전망이다. 특히 GDPR, CCPA 등 글로벌 데이터 보호 규정이 강화되고, 기업의 ESG 책임이 중요해지면서 R2v3와 같은 종합적인 인증 체계의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R2v3 인증은 단순한 재활용을 넘어 데이터 보안, 환경 보호, 근로자 안전, 법규 준수 등을 포괄하는 종합적인 관리 체계를 요구합니다." 환경부 자원순환정책과 관계자는 "국내에서도 이러한 글로벌 표준을 참고해 IT 자산 재활용에 대한 제도적 기반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R2v3 인증이 확산될수록 국내 IT 자산 재활용 산업의 수준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기업들의 데이터 보안 요구가 강화되고, 환경 책임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R2v3와 같은 종합 인증의 가치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