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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87체제의 종언과 새로운 정치의 시작

양상현 기자 2025. 4. 23. 11:41

극단의 갈등정치를 넘어 국민이 원하는 변화는 무엇인가



대한민국 정치는 지금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비상계엄과 방탄국회, 무차별적 탄핵 시도와 극단적 대립. 이것이 우리가 35년 전 피와 땀으로 쟁취한 민주화의 결실인가? 1987년 6월 항쟁 이후 형성된 '87체제'가 마침내 그 한계를 드러내며 최악의 모습으로 종말을 고하고 있다.

김영우 전 국회의원의 최근 발언은 이런 현실을 정확히 짚어냈다. "87체제 이후 막강한 권력을 가졌던 그 어느 대통령도 비상계엄이라는 극단의 카드를 들지 않았다. 또 역대 야당 대표 중 누구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방탄국회'를 열고, 총리와 장관 탄핵을 수십 차례 시도하지는 않았다."

윤석열-이재명으로 대표되는 현재의 정치 구도는 87체제가 낳은 가장 저급한 형태의 정치다. 한쪽에서는 대통령 파면 이후에도 사저에서 퇴행적 보수정치를 고집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당내 압도적 지지를 바탕으로 또 다른 '이석열' 대통령을 꿈꾸고 있다. 두 사람 모두 국민의 신뢰와 기대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한 정치평론가는 "87체제는 권위주의 체제를 무너뜨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이후 건설적인 민주주의를 만들어내는 데는 실패했다"고 지적한다. "지금의 정치는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정치인들의, 정치인들에 의한, 정치인들을 위한 정치로 변질됐다."

실제로 국민들은 이제 보수든 진보든 상관없이, 기득권 정치인들이 벌이는 수준 낮은 정치적 갈등에 질려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이 "현재의 정치권이 국민의 삶과 동떨어져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정치 전반에 대한 불신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음을 보여준다.

정치학자 최장집은 "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는 절차적 민주주의는 이뤘지만, 실질적 민주주의로 나아가지 못했다"며 "정당은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기보다 특정 정치인의 사당화되었고, 정치는 갈등 해결의 장이 아닌 갈등 생산의 장이 됐다"고 비판한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시대의 정치교체는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김영우 전 의원은 "윤석열-이재명 체제를 과거로 돌리고, 시대교체·정치교체를 실현할 수 있는 인물은 한동훈"이라며 "12월 3일 밤, 여당 대표의 신분으로 목숨을 걸고 비상계엄을 막아낸 사람이 바로 한동훈"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이런 주장은 정치적 입장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특정 인물의 부상이 아니라,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87체제의 종언 이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첫째, 극단의 갈등정치를 끝내야 한다. 정치는 타협과 조정의 예술이다.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파괴하려는 정치는 결국 민주주의 자체를 파괴한다.

둘째, 책임지는 정치가 필요하다. 국민의 삶과 동떨어진 이념 논쟁이나 정쟁이 아닌,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정치가 요구된다.

셋째, 새로운 리더십이 등장해야 한다. 87체제에서 성장한 기성 정치인들은 이미 그들의 한계를 보여줬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

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국민들은 이제 진영 논리에 갇힌 정치가 아닌,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정치를 원한다"며 "누가 되든 다음 정치 지도자는 분열이 아닌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한다.

87체제의 종언은 위기이자 기회다. 우리가 이 전환점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극단의 갈등정치를 넘어, 국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새로운 정치의 시작이 필요한 때다.

정치는 결국 국민의 삶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정치인들의 권력 투쟁이나 자리 다툼이 아닌, 국민의 행복과 국가의 발전을 위한 정치로 돌아가야 할 때다. 87체제의 종언 이후, 우리는 어떤 체제를 만들어갈 것인가? 그 답은 결국 국민의 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