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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탄핵의 강'을 건너야 보수의 미래가 열린다

양상현 기자 2025. 4. 24. 04:40

안철수의 '사과론'이 던지는 정치적 함의와 보수 진영의 선택



정치에서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집단적 트라우마로 작용하는 사건일수록 더욱 그렇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은 보수 진영에 그런 사건이다. 그런데 국민의힘 대선 경선 4강에 오른 안철수 의원이 이 뜨거운 감자를 정면으로 들고 나왔다. "탄핵에 사과하자"는 그의 제안은 정치적 수사를 넘어 보수 정치의 미래를 가늠할 중요한 시금석이 될 수 있다.

안 의원의 제안은 명확하다. 윤석열 탄핵에 대해 국민 앞에 솔직히, 진심으로 사과하자는 것이다. 그는 이를 "탄핵의 강을 건너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이 비유는 의미심장하다. 강을 건너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뜻이니 말이다. 실제로 안 의원은 "탄핵의 강을 넘어야 비로소 국민의 길, 이기는 길이 열린다"고 강조했다.

"안철수 의원의 제안은 정치적 계산을 넘어선 용기 있는 행보입니다." 한 정치평론가의 말이다. "보수 진영 내에서 탄핵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것은 상당한 정치적 위험을 감수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회피한 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는 어렵습니다."

안 의원의 제안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그가 경선 1차 관문을 통과했다는 점이다. 당초 4위 자리를 놓고 경쟁할 것으로 예상됐던 나경원 의원을 제치고 4강에 오른 것이다. 두 사람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탄핵에 대한 입장이었다. 안 의원은 탄핵에 대한 사과와 윤 전 대통령과의 관계 정리를 주장한 반면, 나 의원은 "탄핵 입장을 넘어서 통합해야 한다"며 사실상 반탄 입장을 고수했다.

이 결과는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음을 시사한다. 물론 아직 당내 주류는 탄핵을 부정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적어도 당원들 사이에서 안 의원의 '사과론'이 일정 부분 호응을 얻고 있다는 방증이다.

"보수 진영이 미래로 나아가려면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보수 성향 싱크탱크 연구원의 분석이다. "윤석열 탄핵은 헌법재판소의 만장일치 결정이었습니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헌정 질서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안 의원의 제안은 보수가 헌법적 가치를 지키는 세력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안 의원의 제안은 탄핵 사과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는 임기 단축 개헌, 중앙선관위 개혁, 공수처 폐지, 광역 단위 행정통합 등을 함께 제시했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반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국가 비전을 제시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특히 "더 이상 5년 단임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지속할 수 없다"며 임기 단축 개헌을 제안한 부분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윤석열 탄핵의 근본 원인 중 하나가 제왕적 대통령제의 구조적 문제에 있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문제의 본질을 개인이 아닌 제도에서 찾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는 접근법이다.

"안 의원의 개헌 제안은 탄핵 사과와 맞닿아 있습니다." 이 말은 한 헌법학자의 설명이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권력 남용의 구조적 원인이라면, 이를 개혁하겠다는 약속은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진정한 사과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물론 안 의원의 제안이 다른 후보들에게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김문수, 한동훈, 홍준표 후보 모두 탄핵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한동훈 후보는 윤석열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낸 인물로, 탄핵을 인정하는 것은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과 배치될 수 있다.

그럼에도 안 의원의 제안은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보수 진영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새로운 출발을 모색할 것인가, 아니면 과거를 부정하며 기존의 길을 고수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히 한 정당의 미래를 넘어 한국 정치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다.

"정치는 결국 신뢰의 문제입니다." 한 정치학자의 말이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정치세력은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아도 지지를 얻기 어렵습니다. 안 의원의 '사과론'은 바로 이 신뢰 회복의 출발점을 제시한 것입니다."

안철수 의원이 말한 '탄핵의 강'은 그냥 수사가 아니다. 그것은 보수 정치가 건너야 할 실존적 장벽이다. 이 강을 건너지 않고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고, 신뢰 없이는 정권 창출도 요원하다. 안 의원의 제안이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지만, 적어도 그는 보수 진영이 직면한 근본 문제를 정확히 짚어냈다. 이제 공은 다른 후보들에게 넘어갔다. 그들의 선택이 보수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