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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통증, 우리를 지키는 불편한 선물

양상현 기자 2025. 3. 29. 01:35

고통스러운 경고 신호가 생존의 열쇠가 된 진화의 역설



손가락이 문에 끼었을 때의 날카로운 아픔, 위장이 뒤틀릴 때의 둔중한 통증, 편두통이 찾아올 때의 지독한 고통. 우리는 평생 다양한 형태의 통증과 싸우며 살아간다. 그리고 종종 이런 의문을 품게 된다. 왜 우리는 이토록 아파야만 할까?

통증은 인류의 오랜 적이자 동반자다. 고대 문명부터 현대 의학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끊임없이 통증을 이해하고 제어하려 노력해왔다. 그러나 통증의 본질적 가치와 목적에 대해서는 충분히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성균관대학교 우충완 교수의 연구는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통증은 단순한 감각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정교한 진화적 메커니즘이라는 것이다.

통증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자. 언뜻 유토피아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실상은 악몽에 가깝다. 선천성 무통증 환자들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데, 이로 인해 심각한 부상과 감염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다. 손가락이 불에 타도 모르고, 뼈가 부러져도 인지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평균 수명은 크게 줄어든다.

통증은 우리 몸의 경고 시스템이다. 그러나 단순한 경고음 이상의 복잡한 기능을 수행한다. 우충완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통증은 크게 두 가지 핵심 기능을 통합한 시스템이다. 하나는 '감각-식별' 기능으로, 통증의 위치와 강도, 성질을 인식하게 한다. 다른 하나는 '동기-행동' 기능으로, 통증을 피하고 대응하도록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이 두 기능의 통합은 진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단순히 위험을 감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한 강력한 동기가 필요하다. 통증의 불쾌함은 바로 이 동기를 제공한다. 뜨거운 냄비에 손이 닿았을 때, 우리는 그 열을 감지할 뿐만 아니라 즉각적으로 손을 떼는 행동을 취한다. 이 과정이 없다면 심각한 화상을 입을 것이다.

통증의 진화적 가치는 생존과 직결된다. 통증을 더 잘 느끼고 대응하는 개체가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을 것이다. 이는 자연선택의 과정을 통해 통증 시스템이 점점 더 정교해졌음을 시사한다. 우리의 통증 시스템은 수백만 년의 진화를 거쳐 완성된 생존의 도구인 셈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통증은 양날의 검이 되었다. 급성 통증은 여전히 중요한 경고 신호로 기능하지만, 만성 통증은 오히려 삶의 질을 크게 저하시킨다. 진화적으로 통증 시스템은 즉각적인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발달했지만, 현대인의 만성 통증은 이 시스템의 오작동에 가깝다.

만성 요통, 섬유근육통, 편두통과 같은 지속적인 통증은 더 이상 유용한 경고 신호가 아니다. 오히려 신경계가 과민하게 반응하여 실제 위험이 없는 상황에서도 통증 신호를 지속적으로 발생시키는 것이다. 이는 마치 화재 경보기가 연기 없이도 계속 울리는 것과 같다.

통증에 대한 이해는 철학적 질문으로도 이어진다. 의식과 통증의 관계는 무엇인가? 왜 통증은 단순한 신호 전달을 넘어 주관적인 고통의 경험을 수반하는가? 이는 의식의 본질과 관련된 심오한 문제다. 통증이 단순히 정보 처리만으로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통증을 '느끼지' 않고도 위험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화는 통증을 의식적 경험으로 만들었고, 이는 보다 효과적인 생존 전략이었을 것이다.

통증에 대한 이해는 의학적으로도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통증을 단순히 제거해야 할 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 기능과 목적을 이해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급성 통증은 중요한 진단적 가치를 지니며, 이를 무조건 억제하는 것은 때로 위험할 수 있다. 반면 만성 통증은 더 이상 적응적 가치가 없으므로, 적극적인 관리와 치료가 필요하다.

통증은 불편하지만 필수적인 생존의 도구다. 그것은 우리의 몸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발달시킨 정교한 경고 시스템이다. 통증 없는 삶은 얼핏 매력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그것은 생존에 치명적일 수 있다. 통증은 우리가 살아있음을 확인시켜주는, 진화가 준 불편한 선물인 셈이다.

다음번에 손가락을 문에 끼워 아픔을 느낄 때, 잠시 멈춰 생각해보자. 그 고통스러운 순간은 당신의 몸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수백만 년 동안 완성해온 시스템이 작동하는 순간이다. 통증은 적이 아니라 우리 편에 서서 싸우는 불편한 동맹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