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30. 23:17ㆍ카테고리 없음
민주주의의 탈을 쓴 과두정치, 헌재의 침묵이 말하는 것
민주주의는 종이 위에 쓰인 글자가 아니라 살아 숨쉬는 실천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의 외피를 쓴 과두정치의 실체를 목격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지연은 단순한 행정적 지체가 아닌, 권력의 본질을 드러내는 상징적 사건이다.
'과두정치(oligarchy)'—이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단어는 현대 한국 정치의 민낯을 설명하는 데 놀랍도록 적합하다. 소수의 엘리트가 권력을 독점하는 통치 체제. 겉으로는 법과 제도의 이름을 빌리지만, 실상은 극소수의 이익만을 수호하는 구조. 윤석열 탄핵 과정에서 드러난 헌법재판소의 행태는 이러한 과두정치의 작동 방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헌재가 탄핵심판을 지연시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법리적 검토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표면적 이유 뒤에는 더 깊은 정치적 계산이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이재명'이라는 이름이 상징하는 미래에 대한 기득권 세력의 공포다.
이재명은 단순한 정치인이 아니다. 그는 한국 사회의 기득권 카르텔—정치 권력, 재벌 중심의 경제 권력, 검찰과 사법 권력, 보수 언론—이 결코 건드리지 않았던 불평등 구조와 권력의 폐쇄성에 도전하는 상징이다. 그의 배경과 행보는 기존 엘리트 집단의 논리와는 정반대 지점에 서 있다.
공장 노동자 출신으로 검정고시를 거쳐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의 이력은 그 자체로 기존 엘리트 코스의 부정이다.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시절 보여준 과감한 복지 정책과 재벌 견제는 기득권 세력에게 위협으로 다가왔다.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득권 세력은 자신들의 특권이 해체되는 모습을 상상하며 전율한다.
윤석열 정권을 지키려는 필사적인 노력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단순한 정치적 보복이 아니다. 그들은 이재명이라는 이름 뒤에서 자신들의 종말을 본다. 검찰 권력의 해체, 재벌 중심 경제 구조의 개혁, 언론 권력의 재편—이 모든 것이 그들에게는 생존의 문제다.
헌법재판소의 지연 전략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들은 시간을 끌면서 정치적 상황이 바뀌기를 기대한다. 4월 18일 두 명의 재판관 임기가 만료되면 헌재는 6인 체제로 전환되어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진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계산이다.
이러한 행태는 민주주의의 근본 원칙을 훼손한다.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압도적 다수로 통과시킨 탄핵소추안을 헌재가 정치적 계산으로 지연시킨다면, 이는 국민 주권의 원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다.
과두정치는 언제나 그럴듯한 수사로 자신을 포장한다. 법치, 안정, 질서—이 모든 단어들은 소수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한다. 그들은 국민의 목소리를 '중우정치'로 폄하하고, 자신들만이 국가의 진정한 수호자라고 자처한다. 그러나 역사는 이러한 과두정치가 결국 부패와 불신, 그리고 더 큰 혼란으로 귀결됨을 보여준다.
고대 아테네의 '30인의 참주'가 민주제를 무너뜨리고 피의 공포정치를 벌였듯이, 오늘날의 과두 세력도 민주주의의 외피를 쓰고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려 한다. 그러나 아테네 시민들이 결국 민주주의를 되찾았듯이, 한국 국민도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그들은 헌법의 수호자로서 국민의 뜻을 받들 것인가, 아니면 기득권의 방패막이로 전락할 것인가? 이재명이라는 이름 앞에서 떨고 있는 과두 세력의 마지막 보루가 될 것인가, 아니면 진정한 민주주의의 수호자가 될 것인가?
탄핵이란 헌정 질서를 바로잡는 최후의 민주적 수단이다. 그러나 그조차 제도적 장벽과 엘리트 연대의 논리에 의해 무력화된다면, 우리는 다시금 '소수에 의한 통치'로 회귀하게 된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퇴행이자, 국민 주권의 훼손이다.
역사는 언제나 진실을 기록한다. 헌법재판소가 과연 헌법의 수호자인지, 아니면 이재명이라는 이름을 두려워한 과두의 마지막 보루인지, 그 답은 곧 명확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 판단은 단순한 법적 결정을 넘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