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4. 2. 08:48ㆍ카테고리 없음
윤석열의 마지막 선택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질문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은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다. 선거에서 졌을 때, 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일 때,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승복할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작동한다. 4일로 예고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우리는 이 기본적인 덕목이 얼마나 취약한지 목도하고 있다.
윤석열이 헌재 결정에 승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는 단순한 예측이 아니라 그의 행적에서 비롯된 합리적 추론이다. 대통령 취임 이후 윤석열은 어떤 실패나 패배도 인정하지 않았다. 0.73%p라는 근소한 차이로 대선에서 승리했음에도 패배자를 범죄자 취급했고, 총선 참패 후에도 승복 메시지는 없었다. 오히려 그는 선거 결과를 부정하며 비상계엄 선포의 빌미로 삼았다. 헌재 탄핵심판 과정에서도 비상계엄을 '계몽령'이나 '경고용'이라는 궤변으로 포장했다.
대통령실이 헌재 선고 기일 발표 후 "차분하게 헌재의 결정을 기다릴 것"이라는 짧은 입장문만 내놓은 것도 의미심장하다. 승복 여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국민의힘은 윤석열이 최종변론에서 승복 의사를 밝혔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최후진술에서는 야당 비판만 있었을 뿐 사과나 승복의 메시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왜 윤석열은 승복을 거부할까? 그 답은 극우 지지층과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윤석열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강성 보수층의 절대적 지지 덕분이었다. 체포에 응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법원이 구속취소로 그를 풀어주고 검찰이 항고포기를 한 것도, 헌재가 탄핵심판 결론을 미뤄온 것도 극우세력의 준동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이 탄핵을 승복한다면 극렬 지지층은 즉시 이탈할 가능성이 크다. 극우진영에게 윤석열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과 사회적 불만 해소를 위한 도구적 존재다. 그가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순간, 그들의 지지는 철회될 수 있다. 윤석열로서는 지지층도 잃고 내란 재판에서 중형이 선고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기 위해 끝까지 승복을 거부할 동기가 충분하다.
더구나 윤석열에게는 탄핵심판 외에도 내란죄 형사재판이라는 더 큰 산이 남아있다. 헌재 결정은 파면으로 끝나겠지만, 내란죄 형사재판은 사형 또는 무기징역이라는 중형이 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한남동 관저정치'에서 '서초동 사저정치'로 무대를 옮겨 지지층을 무기로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윤석열의 승복 거부는 한국 사회에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최종적이며, 모든 국민이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 특히 헌법 수호와 국가·국민에 대한 봉사 의무가 있는 대통령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승복 거부는 헌법 질서에 대한 도전이자, 사회 통합을 저해하는 행위다.
역사적으로 볼 때,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지도자는 민주주의에 심각한 위협이 되어왔다. 2021년 미국 의회 난입 사태는 트럼프가 선거 패배를 인정하지 않은 결과였다. 한국에서도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일부 극우세력의 반발로 사회적 혼란이 가중된 바 있다. 윤석열의 승복 거부는 이보다 더 심각한 사회적 분열과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승자와 패자가 공존하는 체제다. 오늘의 패자가 내일의 승자가 될 수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 이런 순환이 가능한 것은 모두가 게임의 규칙, 즉 헌법과 법률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윤석열이 헌재 결정을 승복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순히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 될 것이다.
윤석열에게 승복을 기대하는 것은 그의 태도에 따라 한국 사회의 안정 회복과 정상화가 앞당겨질 수도, 극심한 갈등과 혼란이 장기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까지 대통령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는 것은 정파를 초월한 국민적 염원이다.
역사는 승자보다 패자의 품격을 더 오래 기억한다. 윤석열이 어떤 선택을 할지, 그리고 그 선택이 한국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우리는 곧 목격하게 될 것이다. 승복의 부재가 가져올 민주주의의 위기, 이것이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