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모크라시 있어야 우리도 안전해요"...윤석열 파면에 환호하는 이주노동자들

2025. 4. 5. 19:47카테고리 없음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와 회복을 자신의 일처럼 지켜본 150만 이방인의 목소리


"그거 참 좋아요. 아웃시킨 거 좋아요."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결정 다음 날인 5일 오후, 경기도 포천시의 한 공장 앞. 작업복 차림의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S씨(37)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다. 그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고, 화면에는 윤석열 파면 소식을 전하는 뉴스가 떠 있었다.

"어제부터 계속 뉴스 봐요. 우리 기숙사에서 다른 친구들이랑 같이 봤어요. 다들 '좋다, 좋다' 그랬어요." S씨는 한국에 온 지 8년 된 베테랑 이주노동자다. 유창한 한국어로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했다.

취업비자로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S씨에게 왜 윤석열의 파면이 좋은지 물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데모크라시 한국에 있어야 나 같은 외국인 사람들도 좋아요. 나는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어요. 여기 데모크라시 없으면 우리가 여기서 살 때 불안해요."

S씨의 작업장 동료인 네팔 출신 R씨(29)도 대화에 끼어들었다. "우리는 뉴스 볼 때 한국말 다 이해 못해도 계엄령이 무슨 뜻인지는 알아요. 군인들이 나오면 외국인들 먼저 위험해져요."

이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다. 자국의 경험에서 비롯된 절실함이었다.

"방글라데시에 데모크라시 없어요. 그래서 문제 너무 많아요. 계속 불안해요." S씨는 고향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정부가 마음대로 하면 약한 사람들, 특히 소수자들이 제일 먼저 피해 받아요. 한국은 달라요. 법이 사람들 지켜줘요."

이주노동자 지원단체 포천이주노동자센터 김달성 대표는 "지난 연말 윤석열의 불법 계엄 직후 열린 모임에서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의 상황을 심각하게 우려했다"고 전했다. 당시 모임에 참석했던 S씨도 그 날을 생생히 기억했다.

"그때 우리 모두 걱정 많이 했어요. 군인들이 거리에 나오면 우리 같은 외국인들은 어떻게 되나, 비자 문제는 어떻게 되나, 그런 얘기 많이 했어요."

소흘읍의 한 식당에서 만난 필리핀 출신 이주노동자 M씨(42·여)는 "계엄령 소식을 들었을 때 필리핀의 마르코스 시대가 생각났다"며 "독재는 어느 나라에서든 똑같이 무서운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노동자들의 이러한 반응은 한국 사회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150만 이주민들이 한국의 정치 상황을 단순한 관찰자가 아닌 당사자로 바라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주노동자 인권센터 박민우 소장은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하면 가장 먼저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취약계층"이라며 "그들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것은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고 설명했다.

S씨의 작업장 관리자 김영호(48) 씨는 "평소에도 S씨가 한국 뉴스에 관심이 많았다"며 "때로는 우리보다 더 정치 뉴스를 잘 아는 경우도 있어 놀랄 때가 있다"고 말했다.

저녁 무렵, 퇴근길에 만난 S씨는 스마트폰으로 헌법재판소 결정문을 번역기로 읽고 있었다. "어려운 말 많지만, 중요한 내용 이해하려고 노력해요. 한국 민주주의 지키는 것, 우리한테도 중요해요."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한국 사람들이 민주주의 지키려고 노력하는 거 보면서 배워요. 언젠가 우리나라도 이렇게 되면 좋겠어요. 그때까지 나는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고 싶어요."

이주노동자들의 이러한 반응은 한국 민주주의의 가치가 국경을 넘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들에게 한국의 민주주의는 단순한 정치 체제가 아닌, 자신들의 안전과 권리를 보장해주는 소중한 울타리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