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정청래 의원의 '내란당 해산론'이 던지는 민주주의의 과제

2025. 4. 5. 20:01카테고리 없음

정치적 책임과 역사 청산의 딜레마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 이후, 정치권에서는 그 책임의 범위를 어디까지 확장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고 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5일 국민의힘을 '내란당'으로 규정하고 해산을 언급한 발언은 이 논쟁의 최전선에 서 있다. 그의 주장은 정치적 공세를 넘어,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정 의원은 "내란 반역자, 내란 옹호자들을 용서할 수 있는가? 내란당은 해산시켜야 하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이는 알베르 카뮈의 "프랑스 공화국은 관용으로 건설되지 않는다"는 말을 인용하며, 민주주의를 위협한 세력에 대한 단호한 대응을 촉구하는 메시지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민주주의의 또 다른 핵심 가치인 다원성과 관용 사이의 긴장을 드러낸다.

정 의원이 국민의힘과 그 전신 정당들이 배출한 대통령들의 과오를 나열한 부분은 주목할 만하다. 이승만의 3.15 부정선거, 박정희의 유신독재, 전두환과 노태우의 군사반란, 김영삼의 IMF 국가부도, 이명박의 부정부패, 박근혜의 국정농단, 그리고 윤석열의 비상계엄 내란까지. 이 긴 목록은 한국 현대사의 굴곡진 여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이 역사적 사실들을 근거로 특정 정당의 대선 참여 자격을 문제 삼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 비추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정당은 그 구성원과 지지자들의 집합체로, 일부 지도자의 과오를 전체 정당의 본질적 속성으로 규정하는 것은 지나친 일반화의 위험이 있다. 더구나 정당의 해산은 민주주의 체제에서 가장 극단적인 조치 중 하나로, 헌법재판소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

정 의원의 "오늘의 죄를 벌하지 않는다면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이라는 말은 책임 규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여기서 '죄'와 '벌'의 범위와 방식이 문제다. 윤석열 개인의 위헌적 행위에 대한 책임과, 그가 소속된 정당 전체의 책임은 구분될 필요가 있다. 정당 내에서도 계엄 선포를 지지한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이 있을 수 있으며, 이들을 동일시하는 것은 집단적 책임론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다.

"그들을 단죄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우리를 단죄하려 할 것"이라는 경고는 역사의 교훈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단죄'라는 표현이 함축하는 정치적 보복의 순환 고리는 민주주의의 성숙을 위해 경계해야 할 요소다. 진정한 역사 청산은 특정 세력의 제거가 아닌, 제도적 개혁과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정 의원이 "정치는 타이밍의 예술이다. 역사청산의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고 한 말은 현 시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 '타이밍'에 무엇을 할 것인가는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역사 청산의 이름으로 또 다른 배제와 분열을 초래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진전이 아닌 퇴보를 의미할 수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과제는 윤석열의 계엄 선포와 같은 위헌적 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적 안전장치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는 특정 정당의 해산보다는, 권력 남용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 정치 문화의 개선, 그리고 시민 의식의 성숙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정청래 의원의 문제 제기는 한국 정치가 직면한 책임과 청산의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러나 그 해결책은 배제와 단죄보다는 포용과 개혁의 방향으로 모색되어야 한다. 진정한 민주주의의 발전은 적대적 세력의 제거가 아닌, 다양한 정치 세력이 헌법적 가치 안에서 경쟁하고 협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다.

윤석열의 파면은 끝이 아닌 시작이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적 보복의 악순환이 아닌, 한국 민주주의를 한 단계 더 성숙시킬 수 있는 지혜와 용기다. 그것이 진정한 역사 청산의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