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헌법의 승리, 민주주의의 교훈

2025. 4. 5. 20:08카테고리 없음

윤석열 파면 결정이 남긴 헌정사적 의미와 과제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파면 결정은 단호했다. 8명의 재판관 전원일치로 내려진 이 결정은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12.3 비상계엄은 요건과 절차, 내용 모두에서 위헌·위법이었다는 판단이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의 자정 능력을 보여준 역사적 순간이었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 측이 변론 과정에서 펼친 모든 항변을 일축했다. '야당의 횡포'나 '부정선거 의혹'이 계엄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정치적·제도적·사법적 수단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병력을 동원해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헌재의 지적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상기시킨다.

특히 주목할 점은 헌재가 윤 전 대통령이 극구 부인해 온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와 '주요 정치인 및 법조인' 체포 명단의 실체를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계엄이 단순한 '경고성' 또는 '호소형'이 아니라, 실질적인 헌정 질서 파괴 시도였음을 확인한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이 변론 과정에서 보여준 현실 왜곡과 책임 회피 시도는 결국 헌법의 벽 앞에서 무너졌다.

헌재의 결정문은 민주주의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피청구인은 취임한 때로부터 약 2년 후에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 피청구인이 국정을 주도하도록 국민을 설득할 기회가 있었다. 그 결과가 피청구인의 의도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야당을 지지한 국민의 의사를 배제하려는 시도를 해서는 안 됐다"는 지적은 선거 결과를 존중하지 않는 권위주의적 태도에 대한 명확한 경고다.

이번 결정은 국가긴급권의 남용이 한국 현대사에서 반복되어 온 비극적 패턴을 끊어내는 의미도 갖는다. 과거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이 국가 위기를 명분으로 민주주의를 유린했던 역사가 21세기에 다시 시도되었지만, 이번에는 헌법적 절차를 통해 저지된 것이다. 헌재가 "국가긴급권 남용의 역사를 재현해 국민을 충격에 빠트리고, 사회·경제·정치·외교 전 분야에 혼란을 야기했다"고 지적한 것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정확히 짚은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단순한 법 위반을 넘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시도였다. 국회의 권한을 무력화하고, 사법부의 독립성을 침해하며, 선거관리위원회라는 헌법기관을 침탈하려 했다. 이는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였다. 헌재가 "피청구인은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하고 헌법에 따른 국군통수의무를 위반했다"고 지적한 것은 군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 위험성을 경고한 것이다.

특히 헌재는 대통령의 책무가 단순히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을 초월해 사회공동체를 통합시켜야 할 책무"임을 강조했다. 이는 대통령직의 본질에 대한 중요한 성찰을 담고 있다. 대통령은 특정 정파나 지지층의 대표가 아닌, 국민 전체의 대표자로서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 측이 주장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변명도 헌재에 의해 명확히 반박되었다.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업무 수행 덕분"이라는 지적은 계엄이 실패한 것이 윤 전 대통령의 선의 때문이 아니라,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양심적 판단 덕분이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이번 헌재 결정은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동시에, 앞으로의 과제도 제시한다. 대통령의 국가긴급권 행사에 대한 더 엄격한 제도적 통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점, 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정치 지도자들이 헌법적 가치를 내면화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운다.

윤석열은 이제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대통령의 책무를 위반"하고, "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한" 대통령으로 헌정사에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 사회가 어떤 교훈을 얻고, 어떤 변화를 이루어낼 것인가 하는 점이다. 헌법의 승리가 민주주의의 진전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이번 결정이 담고 있는 헌법적 가치와 원칙이 정치 현장과 시민사회에 깊이 뿌리내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