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광장의 이면, 우리가 보지 못한 민주주의의 댓가

2025. 4. 7. 01:33카테고리 없음

승리의 환호 뒤에 남겨진 빚과 노동의 무게를 생각한다


승리의 순간은 화려하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 이후, 많은 이들이 민주주의의 승리를 축하했다. 언론은 헌재의 판결문을 분석하고, 정치인들은 앞다투어 소감을 밝혔다. 그러나 이 승리의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손들의 노고와 부담이 있었다. 그 무게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얼마 전 들은 이야기가 마음에 남는다. 비상행동에서 일했던 한 활동가는 "윤석열은 파면됐지만 비상행동은 많은 빚을 졌다"고 털어놓았다. 왜 이런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리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씁쓸하게 대답했다. "알잖아요. 한국 시민운동단체가 수줍어서 돈 달라는 소리를 잘 못한다는 거."

한 번의 집회에 2억 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대형 스피커, 무대 설비, 행진 트럭, 안전 장치들... 이 모든 것들은 공짜로 나타나지 않는다. 막판에는 집회 운영비가 부족해 내부에서 속앓이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광장은 매번 채워졌고,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민주주의에는 댓가가 따른다. 그것도 꽤 비싼. 하지만 우리는 그 댓가를 잘 보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공짜라고, 혹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그러나 그 권리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는 돈과 시간을, 그리고 노동을 투자해야 한다.

전국의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집에 가지도 못한 채 광장에서 밀린 잠과 노동력을 쏟아부었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전농과 전여농을 비롯해 남태령을 열었던 사람들, 한강진 키세스와 광화문으로 우리의 자리가 확대되는 동안 그 광장이 가능하도록 몸과 마음을 갈아넣었던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자원활동가들의 노고는 뉴스 헤드라인에 오르지 않았다.

이들은 왜 이런 희생을 감수했을까?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다. 명예를 얻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더 나은 사회, 더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는 헌정 사상 두 번째로 대통령 파면이라는 역사적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광훈이나 전한길 같은 극우 인사들은 파면 선고 이후에도 거리낌 없이 후원금을 요청한다. 반면 민주주의의 최전선에서 싸웠던 이들은 "수줍어서" 대놓고 광장의 빚을 같이 갚자는 말조차 꺼내지 못한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민주주의는 공짜가 아니다.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 그리고 물질적 지원이 있어야 가능하다. 우리가 광장에서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던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를 가능하게 한 수많은 손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승리의 환호성이 잦아든 지금, 우리는 그 이면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광장은 우리 모두의 광장이었다. 그렇다면 그 광장을 만들기 위해 쌓인 빚도 우리 모두의 책임이 아닐까?

십시일반, 작은 돈이라도 함께하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의 가격을 함께 나누는 방법이다. 우리가 누리는 권리의 이면에는 항상 누군가의 의무가 있다. 그 의무를 외면한다면, 우리는 진정한 민주시민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투표장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광장에서, 거리에서, 그리고 우리의 일상에서 끊임없이 가꾸고 지켜나가야 하는 살아있는 유기체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반드시 비용이 따른다. 이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 그것은 민주주의의 혜택을 누리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승리의 순간을 함께 기뻐했다면, 그 과정의 부담도 함께 나누는 것이 옳다. 광장의 빚을 갚는 일, 그것은 단순한 금전적 지원을 넘어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확인하는 행위다. 작은 실천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들어낸 것처럼, 작은 후원이 모여 광장의 빚을 갚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