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덕수의 헌법재판관 지명이 던지는 헌정질서의 근본 질문

2025. 4. 8. 15:54카테고리 없음

권한대행의 딜레마, 민주주의의 시험대

권력의 공백기에 누가, 어디까지, 무엇을 결정할 수 있는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지명은 이 근본적인 질문을 우리 사회에 던졌다. 그의 결정은 단순한 인사 문제를 넘어,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와 헌정질서의 본질에 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한 권한대행은 "헌재 결원 사태 방지"와 "국론 분열 악화 방지"를 지명의 이유로 들었다. 그의 논리는 일견 합리적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소의 기능이 마비된다면 대선 관리, 추경 준비, 통상 현안 대응 등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는 분명 현실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실용적 논리가 헌정질서의 근본 원칙을 뛰어넘을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권한대행 제도의 본질은 국정의 공백을 최소화하는 데 있다. 그것은 결코 차기 대통령의 권한을 선점하거나, 장기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특히 60일 후면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될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6년 임기의 헌법재판관을 서둘러 지명하는 것은 권한대행 제도의 취지를 벗어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더욱 복잡한 것은 이번 사안이 단순한 법리적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헌법과 법률이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에 대해 명확한 규정을 두지 않은 상황에서, 이는 필연적으로 정치적 판단과 해석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한 권한대행이 "여야는 물론 법률가, 언론인, 사회원로 등 수많은 분들의 의견을 듣고 숙고했다"고 밝힌 것도 이 문제의 복잡성을 방증한다.

그러나 정치적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모든 결정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특히 이완규 법제처장에 대한 내란 혐의 의혹은 이번 지명의 정치적 의도에 의구심을 더한다. 헌법재판소가 향후 내란 관련 사건을 다룰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단순한 인사 문제를 넘어 사법 정의의 근간에 관한 문제가 된다.

한 권한대행은 지명된 두 인사가 "공평하고 공정한 판단으로 법조계 안팎에 신망이 높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인사의 개인적 역량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지명 과정의 정당성이다. 아무리 유능한 인사라도, 그 임명 과정이 헌정질서의 근본 원칙을 훼손한다면 그 정당성은 의문시될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는 우리 헌정사의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그리고 그 한계를 넘어설 경우 어떤 견제 장치가 작동하는지를 확인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검토 중인 권한쟁의심판 청구와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은 이러한 헌법적 검증 과정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더 넓은 맥락에서, 이번 사태는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시험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권력의 평화로운 이양과 권한의 적절한 행사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다. 특히 헌정 위기 상황에서 이러한 원칙이 더욱 엄격하게 지켜져야 함에도, 현실 정치의 논리가 이를 압도하는 모습은 우려스럽다.

한 권한대행은 "사심없이 오로지 나라를 위해 슬기로운 결정을 내리고자 최선을 다했다"고 밝혔다. 그의 진정성을 의심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좋은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특히 헌정질서와 같은 근본 원칙이 관련된 사안에서는 더욱 그렇다.

결국 이번 헌법재판관 지명 논란은 우리 사회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민주주의는 단순한 다수결이 아니라 권력의 제한과 견제, 그리고 적절한 절차를 통해 작동한다. 이러한 원칙이 위기 상황에서도 지켜질 때, 우리의 민주주의는 한 단계 더 성숙해질 수 있다.

한 권한대행의 결정이 옳은지 그른지는 역사가 판단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번 사태가 우리 헌정질서의 근본 원칙에 대한 깊은 성찰과 논의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논의의 결과가 앞으로의 유사한 상황에서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권한대행의 딜레마는 곧 우리 민주주의의 시험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