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4. 8. 16:56ㆍ카테고리 없음
영남 대형산불이 드러낸 한국 재난관리의 민낯
잿더미로 변한 마을, 검게 그을린 산림, 그리고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의 절망적인 표정. 영남 지역을 휩쓴 대형산불의 참상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人災)'의 전형을 보여준다. 예측 가능했고, 예방할 수 있었으며,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재난이 왜 이토록 큰 참사로 이어졌는가?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앞으로의 재난 대응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한국의 대형산불은 마치 수학 공식처럼 예측 가능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 3월에서 5월 사이의 시기, 고온 건조한 남서풍, 초당 5m 이상의 바람, 침엽수림대—이 네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산불은 부채꼴 모양으로 빠르게 확산된다. 이번 영남 지역 산불은 이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미 위험을 예견했고, 정부 당국도 이를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불 확산 예측도'는 재난방송이나 문자메시지를 통해 주민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이번 산불이 '인재'로 규정되는 핵심적인 이유다. 정보는 있었으나 공유되지 않았고, 예측은 가능했으나 대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주민들은 어디로 대피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고, 소중한 대응 시간을 허비했다.
한국의 재난 관리 시스템은 기술적으로는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다. 산불 확산 예측 기술, 드론을 활용한 모니터링, 인공위성 기반 감시 시스템 등 첨단 기술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적 발전이 실제 재난 현장에서 효과적으로 활용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기술과 현장 사이의 간극, 정보와 행동 사이의 괴리가 재난의 피해를 키우는 주요 원인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패턴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2019년 강원도 고성 산불, 2022년 울진·삼척 산불, 그리고 이번 영남 지역 산불까지—매번 비슷한 문제점이 지적되고, 매번 개선을 약속하지만, 다음 재난에서도 같은 실수가 반복된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한국 재난 관리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다.
재난 관리의 핵심은 '예방-대비-대응-복구'의 선순환 구조다. 그러나 한국의 재난 관리는 '대응-복구'에 치중되어 있고, '예방-대비' 단계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진다. 특히 예방과 대비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어렵고, 정치적 관심도 적기 때문에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재난 관리의 효율성과 비용 측면에서 볼 때, 예방과 대비는 대응과 복구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이번 산불 사태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정보 공유의 실패다. 산불 확산 예측도가 있었음에도 이를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재난 정보는 전문가나 관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위험에 처한 모든 시민들의 생명과 직결된 공공재다. 따라서 신속하고 정확하게, 그리고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전달되어야 한다.
또한 기후변화로 인해 산불의 위험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건조한 날씨가 길어지고, 강풍의 빈도가 증가하며, 산림의 건조도가 높아지는 등 산불 발생과 확산에 유리한 조건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재난 관리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재난 정보의 공유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산불 확산 예측도와 같은 중요 정보는 실시간으로 주민들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둘째, 초기 대응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산불은 초기에 진화하지 못하면 통제 불능 상태가 될 수 있다. 셋째, 지역 주민들의 재난 대비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대피 경로, 비상 연락망, 기본적인 대응 요령 등을 평소에 숙지하도록 해야 한다.
영남 지역 대형산불의 잿더미 속에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자연은 우리에게 재난의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우리가 그 패턴을 인식하고, 적절히 대응할 차례다. 예측 가능한 재앙이 반복되는 인재의 비극을 끝내기 위해, 우리는 더 현명하고, 더 선제적이며, 더 체계적인 재난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것이 산불로 모든 것을 잃은 주민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