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4. 8. 20:29ㆍ카테고리 없음
이재명 배임 재판이 드러내는 선택적 정의와 법의 정치화
"바7은 바나나 7만 원인가요?" "추가2는 2만 원이 맞나요, 오기 아닌가요?" 수원지법 재판부가 검찰에 던진 이 질문들은 단순한 사실 확인을 넘어 우리 사회의 정치 재판이 얼마나 기이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대한민국 정치권의 유력 대선 후보가 2만 원짜리 과일 구입을 두고 법정에 서야 하는 현실. 이것이 과연 정의의 실현인가, 아니면 법의 정치적 남용인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업무상 배임 혐의 재판은 그 시작부터 정치적 맥락을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부인 김혜경씨의 '10만4000원 사건' 판결 직후 기소된 점, 그리고 이제 본재판이 6.3 조기대선 이후로 미뤄지게 된 점은 이 재판의 정치적 함의를 더욱 부각시킨다.
검찰이 주장하는 배임액 1억653만 원. 이 금액은 경기도지사라는 공직자의 4년 임기 동안 발생한 것으로, 연간 약 2,500만 원 정도다. 과일 2,791만 원, 샌드위치 685만 원, 세탁비 270만 원... 이런 항목들이 과연 형사 재판의 대상이 될 만큼 중대한 범죄인가? 더구나 이런 지출이 공적 업무와 완전히 분리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도지사의 공관에서 손님 접대용 과일, 야근 직원들을 위한 샌드위치, 공식 행사를 위한 의류 세탁 - 이것들은 모두 공적 업무의 연장선상에 있을 수 있다.
재판부가 "바7은 바나나 7만 원인가?"라고 물었을 때 검찰은 "그렇게 추정하고 있다"고 답했다. '추정'이라는 단어는 의미심장하다. 형사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위해서는 '합리적 의심을 넘어서는 증명'이 필요하다. 그런데 검찰은 핵심 증거에 대해 '추정'이라는 단서를 달고 있다. 이는 공소사실의 근거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욱 문제적인 것은 이 재판의 일정이다. 공판준비기일이 3차까지 예정되어 있어 본재판은 6월 초, 즉 조기대선 이후에나 시작될 전망이다. 만약 이재명 대표가 대선에서 당선된다면 어떻게 될까? 대통령은 재임 중 불소추특권을 갖기 때문에 재판 자체가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마치 재판을 통한 정치적 압박은 가하되, 최종 판결은 유보함으로써 정치적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처럼 보인다.
이런 상황은 법의 정치화, 또는 정치의 사법화라는 우리 사회의 오래된 병폐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정치적 경쟁자를 법정으로 끌어들여 약화시키는 전략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사례는 그 수준이 너무 낮아졌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2만 원짜리 과일, 7만 원짜리 바나나가 정치인의 운명을 좌우하는 사회가 과연 건강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공직자의 예산 사용에 대한 감시와 견제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형사 재판의 형태를 띠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시점이 대선과 맞물려야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만약 이것이 진정으로 법과 정의의 문제라면, 왜 다른 정치인들의 유사한 행위는 문제 삼지 않는지, 왜 하필 대선을 앞둔 시점에 이런 재판이 진행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선택적 정의(selective justice)는 정의가 아니다. 특정 정치인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법치주의의 근간인 '법 앞의 평등'을 훼손한다. 더구나 그 잣대가 2만 원짜리 과일, 7만 원짜리 바나나처럼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들에 맞춰져 있다면, 이는 법의 권위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행위다.
이재명 대표의 재판은 단순한 개인의 형사 사건을 넘어, 우리 사회의 정치와 사법의 관계, 그리고 민주주의의 건강성을 시험하는 시금석이 되고 있다. 2만 원짜리 과일을 두고 벌어지는 이 법정 드라마가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해야 할 때다.
정치와 사법은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상호 견제하는 관계여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사법이 정치의 도구로 전락하는 위험한 순간이다. 2만 원짜리 과일과 7만 원짜리 바나나를 두고 벌어지는 이 소모적인 법정 공방이 하루빨리 끝나고, 진정한 의미의 정의와 법치가 회복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