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4. 10. 07:19ㆍ카테고리 없음
문경민의 소설이 청소년과 어른들에게 던지는 질문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우리는 종종 '이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길인가'라는 의문에 직면한다. 특히 청소년기에 진로를 선택하는 순간은 그 무게가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문경민의 소설 『브릿지』는 이런 보편적인 고민을 첼로라는 악기를 통해 섬세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소설의 주인공 인혜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첼로를 시작해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한 열여덟 살 소녀다. 그녀에게 첼로는 단순한 악기가 아니라 할머니와의 특별한 연결고리였다. 그러나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인혜의 마음에 균열을 일으킨다. 더구나 혼자 계시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발견하고 119에 신고한 사람이 자신에게 유독 엄격했던 첼로 선생님이었다는 사실은 인혜에게 또 다른 충격을 준다.
이 소설의 제목 '브릿지'는 첼로에서 현과 몸통을 연결하는 작은 나무 부품을 가리킨다. 작지만 첼로의 어마어마한 장력을 버티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 부품은 소설 속에서 다양한 상징성을 갖는다. 그것은 인혜와 첼로를 연결하는 다리이자, 인혜와 할머니 사이의 유대, 나아가 과거와 현재, 꿈과 현실을 잇는 통로다.
청소년 문학으로 분류된 이 작품이 주목받아야 하는 이유는 진로 선택의 문제를 단순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청소년 소설이 '꿈을 향해 달려가라'는 메시지를 전하지만, 『브릿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꿈이 정말 네 것인지' 질문한다. 인혜가 첼로를 시작한 계기는 할머니였고, 그녀의 재능을 발견하고 키워준 것도 할머니였다. 그러나 할머니의 부재는 인혜에게 '내가 정말 첼로를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할머니를 위해 연주해온 것인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런 질문은 비단 예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부모님의 기대, 주변의 시선, 사회적 성공의 기준에 맞춰 진로를 선택하는 많은 청소년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문제다. 『브릿지』는 이런 보편적 고민을 첼로라는 구체적 매개체를 통해 섬세하게 풀어냄으로써, 독자들에게 자신의 진로 선택을 돌아볼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이 소설이 '꿈의 포기'와 '꿈의 재정의'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포착한다는 것이다. 인혜는 할머니의 죽음 이후 첼로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지만, 이는 단순히 꿈을 포기하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첼로와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여정이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할머니와의 관계, 선생님과의 관계,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새롭게 발견한다.
『브릿지』가 전하는 또 다른 중요한 메시지는 '여러 길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종종 한 번 선택한 길을 끝까지 가야 한다는 압박을 준다. 특히 예술 분야에서는 '어릴 때부터 시작해야 한다', '한 번 내려놓으면 다시 잡을 수 없다'는 믿음이 강하다. 그러나 이 소설은 언제든 자신이 더 좋아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고, 다른 길로 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다. 이는 진로 선택에 압박을 느끼는 청소년들에게 큰 위안이 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청소년들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선택지와 정보를 접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더 큰 혼란과 압박을 느끼기도 한다.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메시지는 때로 '무엇이든 되어야 한다'는 부담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브릿지』는 자신의 속도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길을 찾아가는 과정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소설 속 인혜가 할머니의 죽음을 통해 겪는 상실과 혼란,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연결은 성장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우리 모두는 살면서 여러 형태의 '브릿지'를 만나고, 때로는 그것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단절 속에서도 새로운 연결을 찾아가는 용기다.
문학은 종종 우리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과 생각을 대신 표현해주는 역할을 한다. 『브릿지』는 진로와 꿈, 관계와 성장에 관한 복잡한 감정을 204페이지라는 제한된 공간에 담아내며, 독자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을 제공한다. 그것이 바로 좋은 청소년 문학이 가진 힘이다.
결국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브릿지'가 필요하다. 과거와 현재를, 꿈과 현실을, 나와 타인을 연결하는 그 작지만 중요한 다리가 있어야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문경민의 『브릿지』는 그런 연결의 중요성을 일깨우며, 자신만의 브릿지를 찾아가는 여정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