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권 꿈에 묻힌 서울시민의 안전

2025. 4. 11. 10:26카테고리 없음

강동구 싱크홀 사고가 드러낸 서울시 행정의 민낯



한 달 전, 서울 강동구 명일동의 평범한 사거리가 순식간에 지름 20미터, 깊이 18미터의 거대한 구멍으로 변했다. 30대 배달노동자가 그 구멍 속으로 사라졌다. 그의 가족은 아직도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하지만 서울시의 수장은 어디에 있는가? 대선 출마를 위한 '휴가'를 내고 정치 행보에 바쁘다.

강동구 싱크홀 사고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여러 증언과 자료들이 이 사고가 '예고된 인재(人災)'였음을 가리키고 있다. 한국터널환경학회는 이미 2021년 서울시에 지반침하 우려를 담은 공문을 보냈다. 서울시는 이를 시공사에 전달만 했을 뿐, 어떠한 선제적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더 충격적인 것은 서울시가 2023년 발주한 '9호선 4단계 연장사업 지하 안전영향평가' 용역 결과, 사고 인근 지역이 이미 매우 위험한 지역으로 분류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사고 당일에도 경고는 있었다. 현장 인근 주유소 사장으로부터 두 차례나 민원이 제기됐다. 하지만 이 모든 신호는 무시됐고, 결국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것이 서울시가 말하는 '안전 서울'의 실체인가?

더 큰 문제는 사고 이후 서울시의 대응이다. 오세훈 시장은 사고 직후 일정을 취소하고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2주가 지난 지금까지 구체적인 대응책은커녕 사과 한마디 없다. 대신 SNS를 통해 조기 대선을 위한 정치적 메시지만 이어가고 있다. 급기야 '휴가'를 내고 당내 경선에 나선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서울시는 작년 서대문구 연희동 싱크홀 사고 이후 마련한 '지반침하 안전지도'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지반침하 위험도를 5개 등급으로 분류한 이 지도는 현재 자치구 및 공사 관계자 등에게만 공유되고 있는데, 강동구 싱크홀 사고 지점의 위험도는 가장 높은 5등급으로 분류됐다고 한다. 서울시는 "국가공간정보기본법에 의거한 서울시 규칙에 따라 공개가 제한되며, 공개 시 불필요한 오해와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미국 플로리다주나 일본 도쿄도 등 선진 도시들은 이미 재난에 대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시민들이 위험을 인지하고 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안전 행정의 기본이다. '오해와 불안을 조성할 수 있다'는 애매한 이유로 정보를 비공개하는 것은 시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안전을 외면하는 행정이다.

서울시의 이런 태도는 결국 시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정치적 이미지 관리를 우선시하는 행정의 민낯을 보여준다.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및 재지정으로 부동산 시장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싱크홀 사고까지 발생해 시민들의 불안감이 높아진 시점이다. 이런 때 시장이 '휴가'를 내고 대선 레이스에 참여하는 것은 직무유기가 아닌가?

시민의 안전은 모든 정책의 기본이자 출발점이다. 아무리 화려한 정책과 비전을 제시해도, 시민이 안전하게 살 수 없다면 그것은 모래성에 불과하다. 서울시는 지금이라도 싱크홀 사고의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반침하 안전지도를 공개하고, 위험 지역에 대한 선제적 관리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 무엇보다 피해자와 그 가족에 대한 신속한 구제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만약 서울시장이 시민의 안전보다 대권 욕망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면, 그것은 시민에 대한 배신이다. 시장직을 유지하면서 대선 행보를 이어가는 것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둘 다 놓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그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다.

서울은 천만 시민이 살아가는 거대한 생활공간이다. 이 공간이 안전하게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서울시장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다. 대권의 꿈은 그 다음이다. 시민의 안전이 정치적 야망에 희생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서울시는 지금이라도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행정으로 돌아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