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면암 광장, 포천의 심장을 뛰게 하라

2025. 4. 11. 22:42카테고리 없음

시민의 손으로 쓰는 도시 재생의 새로운 장 



지난 10일, 포천 신읍동 어울림센터의 회의실. 서른 명 남짓한 시민들이 모인 이 자리에서 한 도시의 미래를 바꿀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면암 광장 설립'이라는 화두 하나가 던져졌을 뿐인데, 참석자들의 눈빛에서는 이미 변화의 열망이 번뜩이고 있었다.

30여 명의 시민이 모인 자리에서 터져 나온 이야기들이 평범한 공간 조성 논의를 넘어 포천의 정체성 재정립이라는 근본적 질문으로 확장되면서다.  

포천은 오랫동안 '정체성의 공백'을 안고 살아왔다. 산정호수와 한탄강의 아름다움은 있지만, 도시의 영혼을 담아낼 중심 공간은 부재했다. 서울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역사의 순간들을 함께 했듯, 포천 시민들에게는 그런 집단적 기억을 새길 장소가 없었다. 그저 행정구역상의 이름일 뿐, 가슴을 울리는 '포천다움'은 희미했다.

"우리에게도 심장이 필요합니다."

면암숭모사업회 유왕현 회장의 이 한마디는 평범한 수사가 아니었다. 도시에 심장이 없다면, 그곳은 그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간일 뿐이다. 심장이 뛰어야 피가 돌고, 피가 돌아야 생명이 움틀 수 있다. 면암 광장은 포천이라는 도시 유기체에 심장을 이식하는 작업인 셈이다.

사실 포천에는 도시 중심부에 시민들이 모일 수 있는 상징적 공간이 없었다. 서울 광화문 광장이나 대구 박정희 광장처럼 도시의 정신을 집약하는 장소가 없는 셈이다. 이 공백을 메우려는 시도가 바로 '면암 광장' 프로젝트다. 포천 출신 독립운동가 최익현 선생의 정신을 담은 이 공간은 단순한 기념비 조성이 아닌 시민 삶의 교차로가 되길 꿈꾼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프로젝트가 관청의 회의실이 아닌, 시민들의 자발적 모임에서 태동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한국 도시 발전사에서 보기 드문 '아래로부터의 혁명'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도시들은 관 주도의 청사진에 따라 획일적으로 변모해왔다. 그 결과 전국의 도시들은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듯 비슷한 얼굴을 하게 됐다.

그러나 포천은 다른 길을 선택하려 한다. 시민들이 먼저 꿈을 꾸고,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진정한 도시의 정체성이 형성된다는 믿음. 이것이 면암 광장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10년 전,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습니다. 오로지 열정 하나로 이 어울림센터를 만들어냈죠."

송호철 전 포천우체국장의 회고는 과거 이야기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강력한 선언이다. 그의 말에 담긴 메시지는 분명하다. 우리는 이미 해냈고, 다시 해낼 수 있다. 관청의 예산과 허가를 기다리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도시의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능동적 주체로서의 자긍심이 그의 목소리에 묻어났다.

면암 최익현은 평범한 역사 속 인물이 아니다. 그는 개인의 안위보다 공동체의 가치를 우선시했던 정신의 상징이다. 이런 정신이 깃든 광장은 단순한 휴식 공간이 아닌, 포천 시민들의 정신적 구심점이 될 것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31세 젊은 회원의 고백이다.

"포천에서 태어났지만, 면암 선생님에 대해 이제야 알게 됐습니다."

이 솔직한 고백은 우리 사회의 단절된 역사 교육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동시에 면암 광장이 평범한 물리적 공간을 넘어, 세대 간 대화의 장이 되어야 함을 일깨운다. 광장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만나는 시간의 교차로가 되어야 한다. 최익현의 정신을 현대적 언어로 재해석하고, 첨단 기술로 그의 생애를 체험하게 하는 혁신적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포천동 행정복지센터 일대에 조성될 이 광장은 그저 그런 공사 현장이 아니라, 4년에 걸친 시민 참여의 실험장이 되어야 한다. 광장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 자체가 포천 시민들의 집단적 경험이 되어야 한다. 설계 단계부터 시민 공모와 투표를 진행하고, 공사 중에도 임시 공간을 활용한 문화 행사를 지속적으로 개최해야 한다. 완성된 결과물보다 그곳에 담긴 시민들의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

광장은 도시의 거울이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풍경들이 그 도시의 진짜 모습을 보여준다. 면암 광장이 관 주도의 전시성 공간으로 전락한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죽은 공간에 불과할 것이다. 진정한 성공은 노인들이 평화롭게 담소를 나누고, 아이들이 뛰어놀며, 청년들이 미래를 꿈꾸는 살아있는 공간이 될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포천 출신 독립운동가 최익현 선생의 정신을 담은 이 공간은 단순한 기념비 조성이 아닌 시민 삶의 교차로가 되길 꿈꾼다.  

포천시는 지금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관 주도의 하향식 발전 모델을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시민 주도의 상향식 혁신을 선택할 것인가. 면암 광장 프로젝트는 단순한 도시계획이 아니라, 포천의 미래를 결정할 시금석이다.

면암 최익현이 개인의 안위보다 나라의 미래를 선택했듯이, 오늘의 포천 시민들도 당장의 편안함보다 미래 세대를 위한 유산을 선택해야 할 때다. 면암 광장은 단순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아니라, 포천 시민들의 자부심과 연대의식이 깃든 살아있는 유산이 될 것이다.

"광장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면암 광장의 성패는 완공 시점이 아닌 활용도에서 결정된다.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축제를 열고, 청년들이 아이디어를 나누며, 어르신들이 추억을 이야기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아야 진정한 성공이다. 포천시가 시민 주도 프로젝트에 예산을 지원하면서도 불필요한 간섭을 자제할 때 비로소 광장은 도시의 심장이 될 수 있다. 이번 기회가 포천이 '행정 주도'에서 '시민 주도' 도시로 전환하는 분기점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포천은 더 이상 서울의 변방이 아닌, 시민 주도 도시 혁신의 모델로 전국에 이름을 알리게 될 것이다. 면암 광장에서 시작된 작은 불씨가 포천의 심장을 뜨겁게 달구고, 나아가 한국 도시 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횃불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