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4. 15. 06:59ㆍ카테고리 없음
장쉐량의 위험한 도박, 내전 중지와 항일 연합의 결정적 전환점
1936년 12월 12일 새벽, 중국 시안(西安)의 화칭츠(华清池) 온천 휴양지에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바꾼 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장쉐량(张学良)의 동북군과 양후청(楊虎城)의 17로군이 국민당 총통 장제스(蔣介石)를 납치한 '시안사변'이 그것이다. 이 사건은 중국 5,000년 역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전환점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당시 장제스는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 이야기로 유명한 화칭츠 호텔에 머물고 있었다. 새벽 잠결에 총성을 들은 장제스는 잠옷 차림으로 호텔 담을 넘어 뒷산으로 도주했으나, 계곡 바위 틈에 숨어 있다가 결국 반란군에게 발견됐다.
"너희들이 날 죽일 생각이면 빨리 쏴라!"라고 외치는 장제스에게 병사들은 "저희는 위원장님을 쏠 생각이 없습니다. 위원장님을 보호하려고 왔을 뿐입니다"라고 답했다. 장제스는 반란군 사령부로 끌려가 독방에 감금됐다.
장쉐량은 분노한 장제스에게 "이것은 병란이 아니라 구국을 위한 병간(兵諫)입니다"라고 설명했다. 병간이란 무력으로 간언한다는 뜻으로, 장쉐량은 이 사건이 단순한 반란이 아닌 국가를 구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강조했다.
장쉐량은 장제스에게 내전 중지와 항일을 국가 방침으로 정할 것, 난징 정부 개편, 정치범 석방, 집회와 결사의 자유 보장 등 8개 요구사항이 담긴 문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장제스는 "내가 임의로 정할 바가 아니다. 내가 뤄양으로 갈 수 있도록 해 주든지 아니면 이 자리에서 죽여라"라며 단호히 거절했다.
중국 현대사 연구자 리우웨이(가명)는 "장제스가 굴복하지 않자 동북군 장교들은 그를 처형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장쉐량은 이를 거부했다"며 "이 결정이 중국 역사의 흐름을 완전히 바꿨다"고 설명했다.
시안사변의 결과, 장제스는 결국 내전 중지와 항일 연합전선 구축에 동의했고, 이는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의 제2차 국공합작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사건의 주역인 장쉐량은 장제스에게 자진 항복해 54년간의 연금 생활을 시작했다.
랴오닝성 선양시에 있는 장씨수부(張氏帥府)의 장쉐량 동상 비문은 그를 "위대한 애국자", "천고공신"으로 평가하며, "중화민족을 위망의 광란에서 구출해 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장쉐량 자신은 만년에 "나는 36세에 죽었다"라고 말하며, 시안사변에 대해 회한 어린 소회를 남겼다.
"시안사변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었다"라고 회고한 장쉐량은 "당시의 나의 이상이란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가련하고 우스꽝스러울 만큼 유치했던가! 그때 나는 무엇이든지 나 혼자 결정하고 내 좋을 대로 행동했다. 다른 사람에게 이용당하면서도 미처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고 자신을 반성했다.
역사학자 장웨이민은 "장쉐량의 시안사변은 개인의 정치적 생명을 걸고 국가의 운명을 바꾸려 한 위험한 도박이었다"며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까지 중국의 내전을 막고 항일 연합전선을 구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시안사변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을 넘어,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개인의 선택이 역사의 흐름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남아있다. 장쉐량의 "병란이 아닌 병간"이라는 말은 그의 행동이 단순한 반란이 아닌, 국가와 민족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강조하는 역사적 증언으로 기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