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권력의 미망과 양심의 경계에서

2025. 4. 16. 00:09카테고리 없음

법정에서 드러난 두 얼굴의 충성, 그리고 민주주의의 자기방어

지난 화요일, 서울중앙지법 대법정. 내란 관련 재판이 진행되는 법정 안은 무거운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법정 한쪽에는 한때 국가 최고 권력을 쥐었던 이가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그의 명령을 거부했다는 군 간부들이 증인석에 섰다. 이 대비되는 두 모습에서 우리는 권력과 양심, 충성과 의무 사이의 깊은 단층선을 목격하고 있다.

어제 저녁, 한 카페에서 만난 전직 헌법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권력자가 꿈꾸는 충성은 맹목적 복종이지만, 진정한 충성은 때로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에서 비롯됩니다." 그의 말은 현재 진행 중인 재판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낸다.

한때 '율산'이라는 호를 받았던 그는 법조인의 정점을 넘어 더 큰 권력을 향한 욕망을 품었다. 손금에 왕(王)자가 있다며 자신의 운명을 믿었고, 주변에서는 "개헌, 재선, 삼선"이라는 메모가 발견되기도 했다. 권력의 정점에서 그는 자신의 명령이라면 무엇이든 수행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법정에서 드러난 현실은 달랐다. "국회의 주인은 국회의원인데 끌어내라니 뭔 소리냐!"라며 명령 수행을 거부한 조성현 경비단장의 증언은 법정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김형기 대대장 역시 "부하들이 시민들로부터 반란군, 계엄군이라는 꾸지람을 듣게 되니 자괴감이 들었다"고 증언했다.

이 증언들이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권력의 사다리를 오르는 과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첨과 맹종이 아닌, 헌법적 가치와 양심에 따른 판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법정에 선 전직 권력자의 표정에서는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대통령일 때는 경호처가 나서서 저런 놈은 입틀막하고 끌어냈는데...'

지난 주말, 서울 광화문의 한 서점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만난 정치학자는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험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배신"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민주주의 체제가 위기에 처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제도 자체가 아니라 그 제도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용기다.

법정에서는 두 종류의 충성이 대비되고 있다. 하나는 개인에 대한 충성이고, 다른 하나는 헌법과 국민에 대한 충성이다. 전자는 권력자의 미소를 얻기 위해 법과 양심을 저버리는 반면, 후자는 때로 권력자의 분노를 감수하면서도 헌법적 가치를 지킨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재판에서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이들이 법조인이 아닌 군인이라는 사실이다. "기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공소장을 읽어낸 검사"보다, 명령 불복종이라는 위험을 감수한 두 군 간부의 모습이 더 선명하게 기억될 것이다.

역사는 권력자의 명령을 맹목적으로 따른 이들보다, 양심에 따라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었던 이들을 더 오래 기억한다. 1961년 터키의 군사 쿠데타 당시 헌법을 지키기 위해 쿠데타에 저항했던 군인들, 19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발포 명령을 거부한 일부 중국군 장교들의 이야기가 그렇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의 자기방어 능력을 목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화려한 수사나 이론이 아닌, 결정적 순간에 양심의 목소리를 따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용기에서 비롯된다.

법정 밖 카페에서 만난 한 방청객은 이렇게 말했다. "오늘 재판을 보면서 민주주의가 얼마나 연약한지, 그리고 동시에 얼마나 강인한지를 함께 느꼈어요." 그의 말처럼, 민주주의는 그것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는 한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권력의 미망에 빠진 이들과 양심의 경계를 지킨 이들. 이 대비되는 모습 속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의 진정한 수호자가 누구인지 분명히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