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4. 17. 00:23ㆍ카테고리 없음
말장난으로 헌법을 농락하는 권한대행의 위험한 행보
권한대행이라는 자리는 본질적으로 임시적이고 제한적이다. 대통령이 부재한 상황에서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로, 그 권한은 필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 헌법학계의 일반적 견해다. 그런데 최근 한덕수 권한대행의 행보는 이런 기본 원칙마저 뒤흔들고 있다.
지난 4월 8일, 한덕수 권한대행은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공식 발표를 통해 이완규, 함상훈을 헌법재판관 후임자로 '지명'했다고 밝혔다. 그는 "결정을 실행에 옮겼다"며 "이 결정의 책임은 오롯이 저에게 있다"고까지 덧붙였다. 그런데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는 갑자기 이를 '지명'이 아닌 '발표'에 불과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말바꾸기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인 말장난으로 보인다.
이 사안의 심각성은 단순히 한 사람의 말 바꾸기에 있지 않다. 헌법재판관 지명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으로, 국가의 헌법 질서를 수호할 최후의 보루를 누가 지킬 것인지 결정하는 중대한 문제다. 이는 권한대행이 함부로 행사할 수 있는 성격의 권한이 아니다. 특히 탄핵으로 대통령이 파면된 상황에서, 그 대통령의 측근을 헌법재판관으로 지명하는 행위는 헌법 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한덕수 권한대행의 이중적 태도다. 그는 국회가 선출한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해서는 '권한대행의 소극적 권한 행사'를 이유로 수개월간 임명을 미뤄왔다. 그러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되자 갑자기 적극적으로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을 지명했다. 이런 모순된 행동은 원칙이 아닌 정치적 계산에 따라 헌법 질서를 좌우하겠다는 위험한 신호로 읽힌다.
한덕수 권한대행의 행태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평화 메시지 계엄' 발언과 묘하게 닮아있다. 명백한 위헌 행위를 저지르고도 말장난으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헌법과 법치를 경시하는 위험한 사고방식의 연속선상에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위임에는 명확한 한계와 책임이 따른다. 한덕수 권한대행은 "이 결정의 책임은 오롯이 저에게 있다"고 말했지만, 정작 어느 국민도 그에게 그런 책임질 권한을 위임한 적이 없다. 권한 없는 자가 책임을 지겠다는 것은 공허한 수사에 불과하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한덕수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지명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이는 9명의 헌법재판관 전원이 한덕수의 행위가 헌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음을 의미한다. 법치국가에서 최고 헌법기관의 이런 판단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럼에도 한덕수 권한대행이 '지명이 아닌 발표'라는 궤변으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려 한다면, 이는 헌법 질서에 대한 또 다른 도전이다. 말장난으로 헌법을 농락하는 이런 행태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시도다.
권한대행 체제는 본질적으로 과도기적이다.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헌법과 법치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다. 그것만이 혼란스러운 정국에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민주주의를 지켜나가는 길이다. 한덕수 권한대행은 더 이상의 말장난을 중단하고, 헌법재판관 지명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말장난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권력자의 진정성 있는 행동과 책임 있는 태도가 있어야 비로소 지켜질 수 있다. 한덕수 권한대행이 진정으로 국가와 헌법을 생각한다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는 용기를 보여야 할 때다. 그것이 현 시점에서 그가 진정으로 '책임'지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