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정당 민주주의와 승리 전략 사이의 딜레마

2025. 4. 17. 13:30카테고리 없음

국민의힘의 '한덕수 카드'가 던지는 질문들



요즘 정치권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 중 하나는 국민의힘의 대선 후보 문제다. 특히 한덕수 권한대행을 둘러싼 논쟁은 단순한 인물 선택의 문제를 넘어 정당 민주주의의 본질과 현실 정치의 냉혹함 사이에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이재명 저지'라는 목표 아래 두 가지 노선이 충돌하고 있다. 하나는 당내 경선을 통해 정당성을 확보한 후보를 내세워야 한다는 원칙론이고, 다른 하나는 이재명을 막기 위해서라면 당 밖의 인물이라도 경쟁력 있는 후보를 영입해야 한다는 현실론이다. 이 두 노선의 충돌은 단순한 전술적 차이가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철학적 입장 차이를 반영한다.

한덕수 권한대행은 분명 매력적인 카드다. 경제통상 전문가로서의 전문성, 행정부 2인자로서의 경험, 그리고 상대적으로 깨끗한 이미지는 분명 강점이다. 그러나 이런 개인적 역량만으로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정치는 결국 국민과의 소통이고, 그 소통의 기반에는 정당이라는 플랫폼이 있다. 정당의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채 '위로부터의 선택'으로 후보를 결정한다면, 그것은 국민과의 소통 채널을 스스로 차단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이러한 접근이 정당 정치의 본질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당은 단순히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특정한 가치와 비전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다. 경선 과정은 그 가치와 비전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검증받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생략하고 '승리'만을 위한 선택을 한다면, 그것은 정당의 존재 이유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현실 정치에서 승리는 중요하다. 특히 이번 대선이 갖는 특수한 맥락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다면, 그 승리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정당 민주주의의 원칙을 저버린 채 얻은 권력이라면, 그 권력은 결국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할 것이다.

한덕수 카드가 갖는 또 다른 문제점은 TV토론과 같은 정치적 격전지에서의 취약성이다. 행정부 2인자로서 그는 윤석열 정부의 정책을 어정쩡하게 옹호하거나 반박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경제통상 전문가로서의 전문성은 강점이지만, 분노한 국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정치적 감수성과 소통 능력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반면, 당내 경선은 후보들이 국민 앞에서 자신의 비전과 정책을 검증받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힘은 자신들의 현주소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기회를 갖게 된다. 경선 과정에서의 치열한 토론과 경쟁은 후보의 역량을 강화하고, 당의 정체성을 선명하게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물론 경선을 통해 선출된 후보가 이재명을 이길 수 있을지에 대한 불확실성은 존재한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결과의 불확실성을 전제로 하는 제도다. 패배의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민주적 절차를 포기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 자체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정당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가능하다. 경선을 통해 선출된 후보가 한덕수와 같은 외부 인사들과 협력하는 모델을 구축할 수 있다. 경선 과정에서 당의 비전과 정책을 명확히 하고, 이를 바탕으로 외부의 전문성과 역량을 결합하는 방식이다. 이는 정당의 민주적 정당성과 외부 인사의 전문성을 동시에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

결국 국민의힘이 직면한 문제는 단기적인 승리와 장기적인 정당 민주주의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의 문제다. 단기적 승리만을 위해 정당 민주주의의 원칙을 저버린다면, 그것은 결국 장기적으로 정당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정치는 결국 국민의 신뢰를 얻는 과정이다. 그 신뢰는 정당이 자신의 원칙과 가치를 지키면서도 국민의 요구에 응답할 때 비로소 형성된다. 국민의힘이 진정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고자 한다면, '후보 쇼핑'이 아닌 정당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는 가운데 최선의 후보를 선출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