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4. 19. 02:23ㆍ카테고리 없음
노포는 단순한 음식점이 아닌 세대를 잇는 추억의 저장소
어느 도시에나 오래된 가게들이 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자리를 지키며 그 도시의 역사와 함께 호흡해온 곳들. 우리는 그런 곳을 '노포(老鋪)'라 부른다. 하지만 노포의 가치는 단순히 오래됐다는 사실에만 있지 않다. 그곳에 쌓인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도 본질을 잃지 않는 적응력에 있다.
의정부 행복로 초입에 자리한 '지동관'은 그런 노포의 전형이다. 1955년 '용해반점'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1963년 지동관으로 간판을 바꾸고, 70년대 후반 현재의 위치로 자리를 옮겼다.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의정부 시민들의 크고 작은 기념일을 함께해온 이곳은 단순한 중화요리점이 아니라 도시의 기억을 간직한 공간이다.
70년대 의정부는 독특한 위치에 있었다. 서울 동북부 고교생들이 하교 후 책가방을 들고 몰려오던 곳. 의정부극장, 중앙극장, 평화극장, 문화극장 등 영화관이 즐비했고, 미군 주둔지라 수입 외화도 서울 중심가와 동시에 개봉했다. 게다가 관람료는 서울보다 저렴해 영화 보고 짜장면 한 그릇 먹고 차비까지 내도 서울시내 관람료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 시절 의정부를 찾던 이들에게 지동관의 짜장면은 문화생활의 마침표였다.
지동관(志東館)이란 이름에는 창업주의 마음이 담겨있다. 중국 산둥 출신인 김성정씨가 고향을 마음에 품고(志)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넣어 지은 이름이다. 더욱 특별한 것은 그가 화교임에도 6·25전쟁에 참전한 특수부대 출신이라는 점. 황해도 적지에서 활동하다 다리를 다친 상이군인이며, 훈장까지 받았다고 한다. 한 그릇의 짜장면 속에 이런 역사가 숨어있다니.
노포하면 사람들은 흔히 오랜 자리지킴과 불변의 맛을 떠올린다. 그래서 '노포'라는 단어에서 어떤 허름함과 무채색의 담담함을 연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 지동관이 60년 넘게 사랑받는 비결은 전통을 지키면서도 끊임없이 변화해왔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지동관에 들어서면 느껴지는 깔끔함. 이 청결함은 정리와 청소, 그리고 맛에서 일관되게 이어진다. 과거 의정부 경제가 주한미군에 의존하던 시절, 미군들도 지동관을 많이 찾았다. 그들을 겨냥한 메뉴가 주효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청결이었을 것이다. 위생은 장병들의 업소 출입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지침이었으니까.
지동관은 오랜 중화요리의 전통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메뉴 개발에 게으르지 않았다. 식탁과 의자, 장식, 주방까지도 늘 청결하게 유지했다. 장식적 감각에 있어서도 고루함과 지루함을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노포가 살아남는 방법이다.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현재에 적응하면서도, 본질은 잃지 않는 것.
지동관은 이제 단순한 식당이 아니라 세대를 잇는 추억의 저장소가 되었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 어머니가 사주신 짜장면 곱빼기, 대학 입학을 축하하며 친구들과 나눈 짬뽕, 첫 월급을 받고 가족을 위해 차린 코스요리, 자녀의 상견례에 예약한 2층 룸. 한 가게에 이렇게 다양한 인생의 순간들이 쌓여있다.
의정부 출신들이 모이면 지동관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연배와 학교, 성별은 각각 다르지만, 의정부와 지동관이란 공통의 기억을 공유한다. 노포의 진정한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점포 저 혼자만의 연륜이 아니라, 그곳에 쌓인 손님들의 애환과 추억이 모여 지역사회의 역사와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것.
도시가 변하고, 사람들이 바뀌어도 지동관 같은 노포들은 그 자리를 지키며 도시의 기억을 보존한다. 그저 짜장면이 아니라, 우리 삶의 한 조각을 간직한 공간. 그래서 오래된 가게들이 문을 닫을 때마다 우리는 단순한 식당 하나가 아니라, 공동의 추억 한 페이지를 잃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