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로컬과 글로벌 사이, 우리가 찾아야 할 균형점

2025. 4. 19. 02:54카테고리 없음

"관찰은 읍면 단위로, 행동은 시군 단위로, 사고는 세계적으로"라는 말이 주는 깊은 울림

지난 주말, 포천 관인면 어느 작은 마을의 폐교를 개조한 공간에서 열린 워크숍에 참석했다. 비가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지역 활동가들과 연구자들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문득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가 '로컬'임을 실감했다.

워크숍 중 한 참가자가 던진 말이 내 머릿속에 깊이 박혔다. "관찰은 읍면 단위로, 행동은 시군 단위로, 사고는 세계적으로." 이 간결한 문장이 왜 그토록 강렬하게 다가왔을까?

우선 '관찰은 읍면 단위로'라는 말은 우리가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장 작은 단위의 삶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의미다. 통계와 빅데이터가 넘쳐나는 시대지만, 실제 사람들의 삶은 추상적인 숫자로 환원될 수 없다. 읍면 단위의 관찰은 구체적인 얼굴과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다.

지난 해 전라남도의 한 작은 마을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그곳에서 만난 70대 할머니는 "이제 마을에 젊은이가 없어 장례를 치를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 이 한 마디가 인구 감소와 고령화라는 추상적 통계보다 더 강렬하게 현실을 드러냈다. 읍면 단위의 관찰은 이처럼 피부에 와닿는 현실 인식의 출발점이다.

'행동은 시군 단위로'는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한 적정 규모에 대한 통찰이다. 너무 작은 단위에서는 자원과 역량의 한계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기 어렵고, 너무 큰 단위에서는 구체성을 잃기 쉽다. 시군 단위는 지역의 특성을 살리면서도 충분한 자원을 모을 수 있는 균형점이다.

경상북도의 한 중소도시에서는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식품 가공 협동조합이 시 단위로 조직되어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개별 마을 단위로는 불가능했을 일이, 시 전체가 움직이면서 가능해진 사례다. 행정, 주민, 기업이 함께 움직일 수 있는 적정 규모가 바로 시군 단위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고는 세계적으로'는 지역에 갇히지 않는 열린 시야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기후 위기, 팬데믹, 경제 불평등 같은 문제들은 한 지역만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다. 또한 다른 나라, 다른 지역의 혁신적인 시도들은 우리에게 중요한 영감을 준다.

덴마크의 작은 섬 삼쇠는 재생에너지만으로 섬 전체의 에너지를 자급자족하는 데 성공했다. 이 사례는 전 세계 수많은 지역에 영감을 주었고, 강원도의 한 마을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세계적 사고는 이처럼 지역의 실천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관찰은 읍면 단위로, 행동은 시군 단위로, 사고는 세계적으로"라는 말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실천적 지혜다. 이는 추상적 담론과 구체적 현실, 지역성과 보편성, 개별성과 연대 사이의 균형을 찾는 방법론이다.

우리는 종종 이 균형을 잃는다. 때로는 너무 큰 그림만 보다가 발 밑의 현실을 놓치고, 때로는 당장의 문제에만 매몰되어 더 넓은 맥락을 보지 못한다. 또 어떤 때는 자기 지역만의 특수성을 강조하다가 다른 지역과의 연대 가능성을 놓치기도 한다.

워크숍이 끝나고 참가자들과 나눈 술자리에서, 한 지역 활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때로는 너무 작게 느껴져요. 하지만 이런 작은 실천들이 모여 세상을 바꾸는 거죠." 그의 말에 깊이 공감하며, 나는 다시 한번 그 문장을 떠올렸다.

관찰은 읍면 단위로, 행동은 시군 단위로, 사고는 세계적으로.

이 균형 잡힌 시각이야말로 복잡한 현실 속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가는 지혜가 아닐까. 워크숍에서 돌아오는 길,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작은 마을들을 바라보며 나는 이 문장을 계속해서 곱씹었다.